[송국건정치칼럼] 다른 듯 닮은 안철수와 윤석열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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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6   |  발행일 2020-10-26 제26면   |  수정 2020-10-26
정치입문 부정 안 한 尹
어느 편에 설 생각일까
이념의 틀 속에 갇히면
보수와 진보 모두 배척
정의와 공정 새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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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의사이자 교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벤처기업인이었던 안철수는 10년쯤 전에 우리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골 의사 박경철, 법륜 스님 등과 '청춘콘서트'라는 순회 강연회를 열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청년들이 겪는 등록금, 취업, 비정규직 차별 같은 고민거리들과 사회문제에 명쾌한 답을 내놓으며 '안철수 현상'이란 말까지 나왔다. 대중적 인기만 따졌을 땐 201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무조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치판의 현실은 냉혹했다. 정치 아마추어는 프로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 아직도 주류 축에 들지 못한 상태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검사 외길을 걸어온 윤석열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 '신드롬' '윤석열 현상'까진 아니나 주로 문재인정권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긍정의 눈으로 보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민주당 소속 두 사람(이낙연·이재명)에 이어 3위가 된 지 꽤 됐다. 그간 여론조사에서 자기는 빼 달라며 손사래를 쳤던 윤석열이 지난주 대검 국감에서 사실상의 정치입문 선언을 했다. '퇴임 후'를 묻자 '사회와 국민을 위한 봉사'로 답했다. '정치 뜻'을 물었는데 '노'를 안 했다. 오랜 정치부 기자 경험에서 그건 '여건'만 되면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건'이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조차 여건이 맞지 않아 고전 중이다. 처음 정치판에 들어갈 땐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구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세력을 만든다는 구상을 했다. '새 정치'를 입에 달고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이념과 노선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정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정당정치, 패거리정치, 이념정치가 자리 잡은 마당에 생활정치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결국 안철수는 적당히 타협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중도이념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좌우로 편이 나뉜 독특한 한국 상황에서 그 구호도 외면당하고 있다. 안철수는 새로운 여건을 만들지 못했고, 기존의 여건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에게 주어진 기존 여건은 어쩌면 안철수보다 더 좋지 않다. 윤석열은 지금 범야권 대선주자로 평가받는다. 범야권의 핵심 세력은 국민의힘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엔 '검사 윤석열'에게 구원(舊怨)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 →이명박·박근혜 정권 비리 의혹→이른바 적폐수사를 이어오며 윤석열이 승승장구한 까닭이다. 윤석열에게 '보수 대권 주자' 타이틀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모두에게 배척을 당하는 여건인 셈이다. 따라서 '윤석열 대망론'을 완성하려면 스스로 새로운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념과 노선 대신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정치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윤석열의 큰 장점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댔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권력들은 불의와 불공정, 반칙과 특권을 저질렀다. 문재인정권에서도 조국을 비롯한 권력 주변을 단죄하려다 궁지에 몰린 윤석열이 정의와 공정을 기치로 정치판을 새로 짜는 실험을 해 보는 걸 상상하면 매우 흥미롭다. 물론 안철수처럼 실패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안철수는 조금 변형됐어도 계속 도전 중이고, 그의 실험이 우리 정치에 도움도 된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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