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이웨이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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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30 07:48  |  수정 2020-10-30 08:00  |  발행일 2020-10-30 제13면

이정연
이정연 <작곡가>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교실 뒤 게시판 꾸미기를 하셨다. 다양한 꾸미기 중 한구석에 항상 자리를 차지했던 건 학생들의 장래희망과 그와 관련한 그림이었다. 게시판에 새겨진 나의 장래희망은 항상 여군이었다. 군복, 군인 아저씨, 군 지프 등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겐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언니가 피아노로 들려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연주에 감동하여 피아노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 한 곡만 멋들어지게 치기 위해 시작한 피아노가 전공이 될 뻔한 중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창작은 늘 고통스럽고 힘들다. 하지만 떠오른 영감에 탄력을 받는 순간, 오선지 위에 놓이는 음들은 짜임새와 구성력을 가지면서 하나의 작품이 된다. 곡이 완성될 때까지 작곡에만 몰두하고, 완성된 음악은 이전의 고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한다.

지난 9월 필자는 영남일보 '문화산책'을 통해 처음으로 수필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글에 대한 창작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고심하던 끝에 작곡과 수필은 음표와 글이라는 수단만 다를 뿐 구성력 있는 시간예술이라는 공통점을 활용, 두 달간 한주 하루씩 실려진 여덟 가지 글의 주제를 미리 선정했다. 그 후, 각 주제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새로운 곡을 쓸 때 전체를 먼저 스케치하는 작업과 비슷하다. 매주 실릴 글의 내용은 음악의 음표처럼 글자에 의해 창작되었고, 여덟 개의 각 주제는 단악장의 음악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편성되었다. 내 음악적 주제가 항상 일상적인 내용을 다루듯 여덟 개의 수필도 내 주변에 관한 소박함으로 다루어졌다.

매주 글의 내용을 구상하며 느낀 점은 음표가 음악을 만들고 글이 문학을 만들며 몸짓으로 춤을 추는 행위가 시간적 흐름에 의해 표현되는 것처럼,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우리 인생도 시간의 연속성 위에 희로애락을 담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을 구상해 나가는 창작자라는 것이다. 내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오늘 하루를 어떤 시간으로 보낼지는 창작자인 자신에게 달려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존 러스킨의 말처럼 각자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무엇으로 인생을 채워가고 있는지 살필 줄 아는 소박하며 위대한 창작자가 되어야 한다.
이정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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