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초제 '심청가' 첫 번째 소리판 장장 세 시간에 걸쳐 완창한 젊은 소리꾼 권가연

  • 조경희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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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01   |  발행일 2020-11-04 제11면   |  수정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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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씨 부인 유언 대목을 노래하는 젊은 소리꾼 권가연씨. <김수형 작가 제공>


"판소리 '심청가'는 오랫동안 제 곁에서 힘을 주는 소리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심청이는 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저의 작은 목소리에 우리 선조의 큰 지혜와 교훈을 담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9월 대구 북구 구암서원 대청마루에서 젊은 소리꾼 권가연(여·30·경산)씨가 동초제 '심청가' 첫 번째 소리판을 장장 세 시간에 걸쳐 완창했다.

당초 4월에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연기됐다가 어렵게 마련된 이날 공연에서 권씨는 첫 대목 '삯바느질'을 시작으로 마지막 대목 '만좌맹인 개안' '어질더질'까지 한결같은 에너지로 완창을 이어갔다. '방아타령' 대목에서는 덩실덩실 부채춤을 추었다. 심봉사가 심청이를 안고 젖동냥하는 소절에서는 진짜 심봉사가 된 듯 애틋한 부정을 표현했다. 또 '심청 부친 봉양' 대목에서는 효녀 심청이 되어 애절하게 소리를 했다. 그는 "심청가는 일인다역을 하는 뮤지컬 같다"고 했다. 실제 공연에서도 권씨는 심청이가 되었다가 심봉사가 되기도 하고, 또 곽씨 부인이 되는 등 자유자재로 역을 소화했다.

권씨가 소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방과 후 민요수업 때였다. 그는 "고교생이 돼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중 중학교 때 배웠던 민요 가락이 운명처럼 떠올랐다"며 "그 길로 바로 국악원을 찾아가게 됐다"고 입문 배경을 설명했다. 고3이 되면서 잠시 공부(수능준비)와 민요를 놓고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공부보다는 소리가 좋다는 걸 깨닫고는 소리에 매진하게 됐다.

영남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권씨는 명창의 길을 향해 현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대구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전수 장학생으로, 각종 대회에서 많은 수상 경력(제22회 완산전국국악대던 일반부 대상)을 자랑하고 있다. 권씨의 스승 주은숙(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씨는 "소리를 해보니 소리만큼 어려운 것이 없지만, 소리만큼 값진 것도 없다"며 "영남대 출강할 때 만난 학생이 소리를 배워보겠다며 찾아 왔을 때 이 학생이 소리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어 대견하다"고 응원을 보냈다.

권씨가 소리를 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완창 발표회다. 노래를 조금만 해도 잘 쉬는 목소리 때문에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완창이 늘 부담스럽다. 특히 판소리 '심청가'의 가사를 다 외운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만큼 분량이 많다. 권씨는 "가사는 외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며 "첫머리 소리(첫 삯바느질, 심청 탄생, 곽씨 부인 유언 등)를 기억해 내 이야기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권씨는 더 많은 분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과 다시 한번 그날의 감동을 나누고 싶어 '심청가' 완창 공연 온라인 상영회를 열고, 유튜브 홈페이지에 무료 배포하고 있다. 그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소리로 나타내야 할 때가 가장 어렵다. 소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10년째 소리를 하면서 이제야 소리에 대한 맛을 알게 됐다"며 "소리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도 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현실을 즐기면서 천천히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조경희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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