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재원 (영남불교문화연구원장)...팔공산 동봉 표지석에 깔린 윷판암각화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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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6   |  발행일 2020-11-17 제29면   |  수정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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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영남불교문화연구원장

팔공산은 주봉인 비로봉(천왕봉,중봉)을 중심으로 동봉(미타봉) 쪽과 서봉(삼성봉) 쪽이 양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솟아 있다. 이 세 봉우리 중 동봉 정상에 윷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안타깝게도 윷판 암각화의 절반 정도가 동봉 표지석 밑에 깔려 있다. 동봉 표지석이 들어서던 1970년대는 서낭당, 장승, 돌탑 같은 전통유적들을 미신의 상징으로 낙인찍어 부수고, 헐어내는 '미신타파'운동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윷판 암각이 만신창이가 된 지 40년 세월이 흘렀다.


암각화는 바위나 암벽에 사실적인 그림이나 추상적인 도형을 새겨 놓은 것으로 바위 그림이라고도 한다. 1970년에 처음 알려진 우리나라 암각화는 제작 시기가 신석기 말에 시작해서 청동기를 거쳐 역사시대로 이어진다. 암각화는 제작 시기의 사회상과 문화의 성격과 원류를 고찰하는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어 국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 중 윷판 암각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만주 국내성의 주산에서부터 한반도 전역에 퍼져 있다. 지금까지 80여 곳에서 발견되었다. 분포상으로 보면 윷놀이가 중국과 일본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속이라는 것과 일치하는 현상이라 주목이 되고 있다. 


동봉의 윷판 암각화는 윷놀이를 위해서 새긴 것은 아니다. 윷판 암각화를 두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다는 설에서부터, 태양의 상징, 점성술, 28수, 우주 천문도,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의 표시라는 등의 주장이 있다. 


우리 민족은 수렵시대부터 산악을 숭배해서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는 국중대회를 매년 시행했다. 통일신라는 산천 제사를 대중소로 나누고 삼산 오악 재사는 왕이 친히 주관했다. 오악에는 신을 모시는 신사(神祠)를 존치했다. 오악 중 중악으로 존숭받은 팔공산에도 공산대왕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832년 법주사로부터 간자를 받아온 심지왕사가 팔공산신과 함께 중악 정상에 올라 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동화사를 창건하고 있다. 고려 시대의 기록으로는 원진국사가 공산 염불난야(염불암)에 있을 때 날이 가물어 동봉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는데,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흡족한 비가 내렸다는 영험 사실이 보경사 원진국사 비에 쓰여 있고, '동국이상국집'에는 신라부흥운동을 진압하러 출정한 이규보가 팔공산신에게 세 번이나 제사를 올리면서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지방 수령이 팔공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도지리지'에는 '해안현 공산에 공산밀대천왕지신(公山密臺天王之神)에게 제사 지내는 수령행제소(守令行祭所)가 있다'고 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수령에게 팔공산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도 신라 중악 팔공산에 기우제단이 있다는 것을 밝혀 놓았다.


팔공산 제사 장소가 어딘지 모르는 지금, 매년 비로봉에서 중악산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는 제단이나 신사가 산 정상에만 있지 않고 산 중턱이나 산 입구에 있는 경우도 많다. 팔공산의 경우 동붕 정상부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과 토기, 청자, 분청사기 파편이 발견되고, 제단을 표시한 것으로 믿어지는 윷판 암각의 존재로 보아 신사나 제단이 동봉에 있었을 가능성이 짙다. 동봉 윷판 암각화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닳은 데다 수많은 사람이 함부로 밟고 다니고, 등산용 지팡이로 장난치는 사람도 있다. 보호 조처가 시급하다. 필자는 동봉 윷판 암각화는 하루빨리 정밀조사를 통해 국가나 지방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문화유산이라고 믿고 있다.


김재원<영남불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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