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열흘 뒤 내년으로 이사 갑니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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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1 08:09  |  수정 2020-12-21 08:10  |  발행일 2020-12-2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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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공교롭게도 영재학급 수료식이 끝나자마자 기초기본학력 지도 선생님들과의 평가회가 이어졌다.

코로나로 수업시수가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줄었지만 20명의 학생이 토요일마다 대면 수업으로 전원 수료했다. 과정을 운영한 선생님도, 참가했던 학생도 뿌듯해했다. 수업 참가 소감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요일마다 새로운 문제에 도전한 것이 무척 즐거웠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맘 졸이던 실험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어메이징 하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고도 했다. 예쁜 선물을 준비해서 기념촬영을 하고 수료증을 전달하였다. 격려와 감사의 말이 넘쳤다. 1년 전 전체 운영계획에 대해 학운위 심의를 받았고 융합프로그램이라 여러 선생님이 학생들이 몰입할 만한 최고의 수업 한 수를 펼친 셈이었다.

그러나 기초기본학력 향상 평가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이 수업의 70%는 확대학급강사가 맡고 있다. 결코 만만지 않은 수업, 마치고 나면 허전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어떤 선생님은 이 방과후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 지나면 일주일을 다 보낸 것 같다고 고백했다. 더욱 심해진 학습격차를 메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학생 개개인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다른 친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간 오후 텅 빈 교실에서 친하지도 않은 낯선 몇몇 아이들과 재미도 없는 어려운 수업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맛있는 간식과 선생님의 친절한 간섭(?)으로 늑장을 부리다 출석은 하지만 내면적으로 학습의욕이 회복되어 자발적 학습자로 이행되기는 참 어렵다. 내년도에는 친분 있는 아이들끼리 4명 정도, 작은 공간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해서 이루어지도록 몇 가지 지원책과 방향을 논의했다.

우리 학교에서 5년간 최하위권 학생만을 담당하여 '최고의 우리 수학쌤'으로 불리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무기력과 답답함을 다 포용한다. 초등학교 분수개념부터 누적된 학습부진이 안겨준 패배감을, 공감과 이해로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게 수학 수업의 목표이다. 중3까지 오면서 도무지 손댈 수 없는 학습결손 이면에 잠재된 그 아이의 밝은 성향, 미래에 대한 욕구를 읽어내고 격려한다.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달콤한 간식보다 문제를 풀다가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때 가장 기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바로 중간고사 응용문제를 해결하여 성적향상에 이르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풀려고 했고 마침내 한두 문제는 풀었다는 아이의 고백, 수학시험에서 스스로가 기특하기는 난생처음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 영남일보 북릴레이에도 소개된 바 있는 '번영의 역설'이란 책의 부제는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은가'다. 그 책에는 '내부 혁신을 끌어당기기 전략'이 가난 이면에 숨어있는 잠재력과 기회 포착이라고 제시한다. 가난한 사회가 번성하려면 외부원조가 아니라 내부의 시장창조 혁신이 일어나야 하고 그래야 지속가능하다는 요지다. 만성질환자에게 진통제를 주는 게 아니라 건강을 회복할 변화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자명하다.

'왜 기초부진은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한때는 수포자였으나 수학선생님의 팬이 된 몇 명을 불렀다. "개념을 꼼꼼하게 찬찬히 가르쳐요. 선생님이 한숨 쉬지 않아요."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 즐겁게 보여요. 좋은 얘기 많이 해 주세요…. 인생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습부진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더불어 사는 법을 새로이 배워야 한다. 앞에 놓여있는 문제가, 상황이 새록새록 새롭다. 이제 2021년으로 간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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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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