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탈리아의 맛' 대구에서 느껴볼까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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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08   |  발행일 2021-01-08 제33면   |  수정 2021-01-08
양식(洋食)은 크게 유럽형과 신대륙형으로 나눠진다. 유럽형은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이 삼각편대를 이룬다.

19세기만 해도 세계 공식 외교문서는 프랑스어였다. 자연 프랑스음식이 양식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일제강점기 국내 유명 철도호텔그릴 양식은 묻지마 프랑스식. 그 틈새를 잘 파고든 게 일식이다. 미국의 뉴욕은 지구촌 식문화의 종착역이다. 여긴 맛보다 자본에 충실하다. 자연 다국적 브랜드를 겨냥한, 맥도날드, KFC 등과 같은 패스트푸드가 득세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슬로푸드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이탈리아 음식, 특히 파스타와 피자가 프랑스 바게트 신화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80년대만 해도 서울의 웬만한 유명 호텔레스토랑 등은 프랑스버전이었다. 또한 과도한 토핑으로 인해 너무 육중한 미국식 피자가 국내 시장을 공략한다. 피자헛 등 국내 피자 브랜드의 호주머니가 두툼해진다.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도 그 연장이다.

이탈리아 음식에 빠진 대구 셰프들
대구 첫 이탈리아 레스토랑 1981년 등장
2000년 초반 지나며 '파스타 문화' 확산
당시에는 외국인에게만 본토식 선보여

성악가 셰프의 '까를로' 음악회도 열어
2010년 이후 유학파들 '본토의 맛' 소개

그런데 깔끔·날렵·담백한, 본질에 충실한 이탈리아 피자가 다크호스로 출현한다. 양식의 축이 프랑스쪽에서 이탈리아쪽으로 이동한다.

신년을 맞아 갑자기 대구에서 이탈리아 음식에 올인한 셰프의 뒤안길을 중간점검 해 보고 싶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가게 상호에 '이탈리아'란 말을 사용한 사람은 누굴까? 신개념 커피숍의 신지평을 열었던 '늘봄'과 옛 중앙파출소 옆 화방골목 중간 경양식 레스토랑 '풀하우스'의 연대기를 적어나간 박청강 여사다. 지역 커피숍과 경양식의 대모로 불리는 그녀는 81년 지역 건축인테리어의 신기원을 연 박재봉과 손을 잡고 동성로에서 '이탈리아노'를 오픈한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미국식 피자가 상륙한다. 중구 동성로 3가에 행인도 볼 수 있게 오픈주방을 만들어 피자용 도우를 빚는 과정을 볼 수 있게 한 '뉴욕피자'다. 물론 이탈리아 현지 원형의 맛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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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현지 유전자를 듬뿍 담은 구자태·자덕 형제. 지오네와 국수 레스토랑을 통해 이탈리아 현지 가정식의 정수가 담긴 파스타를 제대로 전하고 있다. 대구 지역 맛의 정서를 최소한 적게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지오네는 나폴리 정통 방식의 화덕으로 피자, 그리고 생파스타의 신지평을 열고 있다. 동생 자덕은 티본스테이크, 모듬 버섯을 활용한 리조또 등을 선순환시켜 지역 푸드블로거에게 인정받는다.

2000년초 대구. 나름 탐험정신을 가진 이탈리안 레스토랑들이 돋아난다. 중구 삼덕성당 뒷골목 '이태리 & 이태리', 연이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근처에 B2, 인투(INTO)와 디종이 파스타문화에 불을 지핀다. 이태리 & 이태리 총주방장 인정원. 그는 서울에서 다양한 양식 경험을 쌓고 대구로 입성, 이탈리아 푸드에 불을 지핀다. 그는 독립해 대백 근처에 깐깐한 잣대의 '리틀 이탈리아노'를 오픈한다. 그와 손을 잡고 그 주방을 지켰던 구자태. 그가 2002년 그 업소를 인수하고 2017년까지 존속시킨다. 고등어파스타, 라비올리 등 이탈리아 현지인이 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통 파스타 30여종을 선보인다. 일반 손님에겐 원형에서 조금 벗어난 퓨전 스타일, 하지만 외국인에겐 본토식을 내밀었다. 대구란 특수성 때문에 이원체제로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기량을 올려 2015년 정통 피자를 만드는 지오네 동성점, 2017년 남구 대명9동 앞산카페거리에 본점이랄 수 있는 '지오네'까지 오픈한다. 바로 옆에 그처럼 이탈리아 푸드에 심취한 친동생 구자덕이 운영하는 '국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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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오의 인기 메뉴 '한우 안심을 올린 크림파스타'.
2007년 성악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김학진이 셰프로 변신해 귀향한다. 그해 4월 수성구 지산성당 근처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를로(Carlo)'를 오픈한다. 까를로는 오너셰프 김학진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신세를 많이지고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사부의 이름이다. 그는 1985년 이탈리아 피렌체 콘서바토리(국립음악원 격)에 들어간다. 마지막 벨칸토로 불리던 지노베끼 교수한테 레슨을 받던 중 심각한 성대결절이 생겨 내 성악 인생도 끝이 나고 말았다. 성악을 그만두고 훗날 자기 인생의 두 번째 사부가 되는 패션의류유통업 CEO였던 까를로 덕분에 불법체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부가 손을 쓴 것이다. 이탈리아 관할 경찰청을 통해 체류허가증서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피렌체 체류허가 1호 한국인 여권을 발급받게 된다. IMF 외환위기 때 이탈리아에서 하던 사업이 망한다. 까를로가 딱한 그를 보며 "이제 곧 한국에도 이탈리아 음식 붐이 일 것이니 고향에 가서 이탈리아 식당을 열라"고 권유한다. 그 일환으로 피렌체에서는 꽤 큰 규모의 '제로제로'란 식당에서 6개월간 마씨 밀리아노 오너셰프한테 요리를 배운다. 한때 100회 이상 살롱음악회도 했다. 지금은 완전 예약제다. 매일 매천시장 가서 식재료를 사와 그날 필에 맞는 걸 오마카세식(셰프 맘대로)으로 버무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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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의 메뉴 '노르마'. 까따리나 지방의 대표 파스타다.
2010년 두 명의 유학파 여성 셰프가 등장한다. 3월에 들안길에서 김연아가 '테이스팅 테이블(Tasting table)', 그해 8월에는 이탈리아 뻬루자 국립대 교환학생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던 박소진 셰프가 수성못 옆에 '빠빠베로(이탈리아어로 양귀비꽃)'를 오픈한다. 홍중곤은 어린이회관 근처에서 '알리오'를 오픈한다. 대구발 이탈리안 푸드가 나름 선순환 모드를 그리기 시작한다.

글·사진=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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