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흔들리는 자본주의

  • 박진관
  • |
  • 입력 2021-01-22   |  발행일 2021-01-22 제22면   |  수정 2021-01-22
코로나로 촉발된 경제위기
취약계층에 악영향 미치며
소득불평등은 더욱 심화돼
불평등 완화 자본주의 위한
미래지향 결정은 정치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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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 객원논설위원

'기본소득제와 이익공유제'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기업의 지배구조에 일대 변혁을 가한 소위 '공정경제 3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거기다 요즘 서점가에서는 '홀로 선 자본주의'(브랑코 밀라노비치), '자본과 이데올로기'(토마 피케티), '좁은 회랑'(대런 애쓰모글루) 등 현대 세계의 지배적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과 위기상황을 논의하는 책들이 가판대를 휩쓸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에 비틀거리고 있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현상이다.

절박한 위기상황, 공포에 사로잡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력한 정부에 의한 보호막을 원하며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가 유보되는 것을 용인한다. 자영업자와 기업들의 통상적인 이윤추구행위도 기꺼이 통제됨은 물론이다. 오랜 기간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어온 소득불평등도 자본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30%대에 머물던 상위 10%의 소득비중이 40%를 넘어 50%에 육박하고, IT 대기업인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애플(Apple),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 등 이른바 FAANG의 시가총액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한다. 이러한 추세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심화할 수밖에 없다.

기업 간 기술격차는 독과점의 요람이 되며 무엇보다 머신러닝으로 AI가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하면, 초급 프로그래머 일자리부터 사라진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 충격이 될 것이며, 특히 취약계층에 악영향을 미쳐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번 미 의회난입 사태도 그 뿌리에는 소득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를 휘몰아치고 있는 부동산대란으로 인한 자산소득의 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의 균열을 더욱 벌려 놓는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14세기 유럽에서만 2천500만 명이 사망한 흑사병이 노동력 부족을 일으켜 귀족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신장시켰던 역사를 반복하여,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악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리'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 논란의 핵심이다. 냉전 이후 홀로 독야청청한 자본주의는 탐욕적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냉소적 비판을 받는다.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자본주의를 미국식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와 국가 중심의 국가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로 양분한다. 자유 자본주의 하에서 소득불평등은 날로 커졌고 계급과 세대 간 소득의 불균형은 깊어졌다. 중국처럼 국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는 민주적 검증장치의 부재로 쉽게 무력화되는 단점이 있으며, 법치의 결핍으로 부패를 양산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기업의 자유롭고 도전적인 환경에서 태어나는 창의적 발상이 사회적 풍요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반면, 창조적 파괴와 역량의 차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근원이 된다. 양자사이에서 치우치지 않은 조정기능은 문제해결의 핵심이며 자본주의의 진화에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를테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상생지향 조세정책과 계급 간 이동을 터주는 교육정책, 무엇보다 어려운 현재만이 아닌 미래지향적 복지정책의 결정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한 정치적 판단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결정한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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