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행간을 찍다] 노숙에 대한 명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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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6   |  발행일 2021-02-26 제34면   |  수정 2021-02-26

노숙

어느 역전에서 만난 그 사내. 세인의 시선? 그에겐 그게 거미줄이다. 그는 술과 술 사이를 거미처럼 오간다. 밥이 키워놓은 맘은 오래전 내버렸다. 그의 일상인 노숙(路宿)은 의외로 기초가 견고하다. 그는 이미 세상을 향한 언어도, 자신을 향한 말도 모두 차단시켜 버렸다. 늘 와불(臥佛)처럼 빙그레 누워 있다. 아침·낮·밤의 구별이 없는 그의 잠. 난 그게 일종의 내공이라 생각한다. 비상과 나락의 동등, 아니 동질성 같은 게 전해져 온다.

누구와 절대 눈높이로 마주치지 않는다. 물론 자신과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토에선 솔직히 답답한 게 없다.

그는 거리에서 터득했다. 자신을 삭제하는 법을. 술의 길, 그건 신선의 길과 닮았다. 술이 찾아올 땐 세상은 철저하게 내 중심으로 돈다. 술이 떠날 때쯤이면 나는 변방이 된다. 그는 술이 깨려고 할 때 다시 술을 마셔준다. 전자의 술은 후자의 술과 의기투합을 한다. 그의 일상은 항상 술술술술~. 사내는 비로소 알코올 버전으로 아득하게 나날이 풀려나갈 수 있었다.

그의 연대기가 '불행'이란 단어로 봉인될 수 있을까. 삶이 너무나 독하니 어쩜 술은 물보다 싱겁다. 세상이 술보다 독하니 술을 먹어도 쉬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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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첫 햇살이 닿는 커피숍의 한 테이블. 거기 앉아 나는 저 와불을 친견하고 있다. 느티나무 줄기에 처연하게 기댄 머리. 무르팍 곁에 술잔이 놓여 있고 곁에 모 술회사의 광고포스트가 떡하니 그를 지켜주고 있다.

술은 사내에게 하나의 마력이다. 모두 다 자기를 떠났는데 술 한 잔의 마법은 수호천사처럼 그를 지켜준다. 그 부력에 실려 사내는 슬픔을 집어삼키는 더 거대한 슬픔이 될 수 있었다.

빙하 속 크레바스처럼 펼쳐진 마왕 같은 사내의 잠. 해체 불가이면서 복원 불가. 분석 불가이면서 매매 불가다. 사방이 난공불락이니 어느덧 '미스터 불가(佛家)'. 저 태연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추락. 이제 그 앞에선 법과 제도, 예의와 도덕, 교양까지도 중과부적이고 어불성설. 저 행색의 밑변은 너무나 광대해 그 어떤 기중기로도 옮길 수가 없다.

누가 그에게 다가와 여우비 같은 희망을 노래하고 지나간다. 사내는 그 노래를 향해 '희망 또한 절망'이라고 중얼거린다.

수많은 사무실과 가게. 그 공간의 주인들도 모두 집으로 갔다. 몸이 집이 되어버린 사내는 집으로 갈 이유가 없다. 길바닥이 봉쇄해 버린 사내의 발자국. 찬찬히 들여다보니 성경도 보이고 불경도 보이고 코란도 보인다.

높은 곳은 더 높아지려는 맘으로 더욱 아득히 멀어진다. 더 낮은 곳, 진정 몇이나 그 언저리에 도달했겠는가. 150억광년 너머에서 출발한 별빛 하나가 사내의 잠을 내려다본다. 나는 저 노숙의 잠을 '행찍'에 올려주고 싶었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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