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開소리]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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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2   |  발행일 2021-03-02 제22면   |  수정 2021-03-02
"정치말고 잘하는 농구나 해"
즐라탄의 르브론 저격 한심
모두 잘못된 정치 침묵하면
공정·자원배분 왜곡 일어나
그 화살 결국 내게 돌아오고
나라 망하면 본업도 없으니
비판의 목소리를 계속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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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네가 잘하는 것, 네 영역의 일을 해라. 나는 축구선수기에 축구만 한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만약 내가 정치인이었다면 정치만 했을 것이다."

'즐라탄'이라는 축구선수가 농구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에게 한 말이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즐라탄은 영국과 이탈리아 프로팀에서 활동하며 500골 이상을 넣은 슈퍼스타다. 41세인 올해도 이탈리아 리그 소속으로 득점 3위를 달리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으니, 이 정도 선수라면 남에게 '네 본업에 충실하라'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즐라탄이 저격한 르브론은 현재 전 세계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다. 은퇴한 마이클 조던에 이어 역대 2위로 평가받는 데다, 지난 시즌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르브론만큼 본업에 충실한 사람을 찾아보긴 힘들다. 오히려 르브론이 즐라탄에게 "나한테 신경 쓸 시간에 축구 연습이나 해"라고 할 법하다. 두 번째, 이게 더 큰 문제인데,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둔 채 다른 이는 정치에 대해 간섭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느 정도 사는 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질구레한 일들은 정치인들에게 맡길지라도 헌법을 바꾼다든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든지 하는 중요한 사안은 국민투표로 이루어지고 있다. 돈도 더 들고 절차도 번거로울지라도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유는 많은 국민의 참여하에 이루어지는 정치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가가 국민의 정치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판에, 정치에 관심을 끄고 본업에 충실하라는 말은 헛소리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분야인데 국민 누구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자원 배분의 왜곡이 일어난다. 세금을 정치인들끼리 나눠 먹어도, 개발정보를 미리 빼돌려 천문학적 부를 축적해도,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프랑스 드골 전 대통령이 "정치는 정치인에게만 맡겨놓기엔 너무 중요하다"라고 말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즐라탄은 르브론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르브론이 농구는 잘 알지 몰라도,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도 르브론이 정치에 대한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유명인사들이 어느 정도 지위에 올랐을 때 하는 첫 번째 실수"라는 게 즐라탄의 설명이다. 물론 정치에 대해 많이 알면 정치적 발언을 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정치를 모르면 입 닥치고 있어라'라고 얘기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정치의 목표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정책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나쁜 정치가 된다. 그럴 때 '이 정책이 나쁘다'라고 말함으로써 정책이 바뀌게끔 해야 나쁜 정치가 사라진다. 이 일은 꼭 많이 배우고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다 코로나19 백신을 맞는데 우리 정부는 백신을 구할 생각을 안 한다면, '백신을 구하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권력자의 딸이 표창장을 위조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 학생의 입학을 취소시켜라'고 외치는 게 맞다.

이쯤 해서 르브론이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알아보자. 그는 1984년 당시 16세이던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르브론은 흑인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는데, 초등학교 때 전학을 12번이나 다녔다. 그런데 르브론이 본 흑인 아이들의 삶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비와 용돈을 구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마약을 팔고 그러다 경찰에 잡혀 전과자가 됐다. 전과자는 취업이 어려우니 어른이 된 후에도 쭉 가난할 수밖에 없고,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흑인 아이들은 또다시 마약을 팔았다. 다행히 르브론에게는 천부적인 운동능력이 있어서 그는 연봉 400억원을 넘게 받는 스포츠 부호가 된다.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했으니 농구에만 전념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돈을 얼마나 벌든,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든,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는 발언에서 보듯, 르브론은 인종차별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명사다. 비무장 흑인 한 명이 경찰에게 7발의 총탄을 맞은 지난해 8월 그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던 플레이오프에 뛰지 않겠다고 선언해 경기를 취소시키기도 했고, 흑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투표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또 흑인들을 위해 학교를 짓거나 장학금을 주는 일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쓴다. 2015년에는 490억원의 기부를 발표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즐라탄의 르브론 저격이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흑인들 입장에서 르브론은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대변해 주는 영웅일 수밖에 없다.

"난 흑인이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말하지 말자. 잘못된 정치에 침묵하면 그 화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2019년 개그맨 이용진이 한 유튜브 채널에서 대통령을 지칭하며 '문재인씨'라고 부른 적이 있다. '씨'라는 호칭도 충분히 높인 것이지만 친문세력은 이 말에 흥분했고, 결국 그는 사과와 함께 유튜브를 닫아야 했다. 원래 웃음은 힘센 권력을 조롱할 때 나오는 법이지만, 대통령을 왕으로 떠받드는 공격 앞에서 정치풍자 유머는 설 땅이 없어졌고, 이는 개그콘서트(개콘)가 폐지되는 한 이유가 됐다. 그가 욕먹을 때 많은 이들이 그의 편에 서서 싸워줬다면, 개콘이 조금 더 연장되지 않았을까? 아닌 걸 아니라고 외쳐야 여기서 탈출할 수 있건만, 비판의 소리를 내는 이에게 또 다른 즐라탄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본업에나 충실해." 정권 비판을 하는 나 역시 '기생충 연구나 하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움츠러들지 말자.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를 계속 내자. 나라가 망한 뒤에는 본업이고 뭐고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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