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조성희 월드…단편작품으로 놀라움 준 괴물 신인, 10년후 K-SF 장르 확장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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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39면   |  수정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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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감독

조성희 감독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 4년 동안 미대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연극에 몰두했다. 2학년 때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번개'라는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고. 학부를 마치고 동기들과 '아이언 스튜디오'라는 CG회사를 차려 광고회사에 납품을 하거나, 한 제작사가 준비하던 괴수영화의 크리처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EBS에서 방영된 바 있는 올리브스튜디오의 '따개비 루'의 몇몇 에피소드를 연출한다. 그러나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 없이 반복되는 컴퓨터 작업에 지쳐가던 30세 무렵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로 들어간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이곳에서 제대로 연출 수업을 받은 그는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어 단숨에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다.

단편영화로는 꽤 긴 43분짜리 '남매의 집'(2009)은 지금 봐도 놀라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2009년 제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데, 이 영화제에서 대상 수상작이 나온 건 2002년 제1회 이후 7년 만이었다. 까닭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으면 그해 대상을 '패싱'해왔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은 "진정한 선수가 한 명 나왔다"고 극찬했고, 배우 정재영은 "처음 만든 영화라는데 정말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해 칸 국제영화제 학생 경쟁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3등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까지 수상하며 단편에 주어지는 영예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반지하방에 갇혀 사는 오누이에게 갑작스럽게 알 수 없는 침입자가 찾아온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며 관객의 공포심을 키우는 대단히 독창적인 연출이었다.


미쟝센 단편영화 대상작 '남매의 집'
7년만에 만장일치 수상작 선정 주목

철저한 비전·완결성 가진 '짐승의 끝'
충무로 입성한 상업영화 '늑대소년'
누아르·탐정물 현실화 '탐정 홍길동'

한국 첫 우주 SF블록버스터 '승리호'
할리우드 제작비 10분의1 수준 제작
화려한 CG·VFX 기법 호평 받을만



'짐승의 끝'(2010)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제작된 영화로 '남매의 집'에서 보여준 상상력의 단초를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모두가 사라진 세상의 끝에서 아기를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임신부의 모습을 통해 지구 종말의 끝에서 관객이 느낄 공포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시나리오에 반해 배우 박해일이 흔쾌히 출연을 약속했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미옥'으로 분해 시청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배우 이민지가 만삭의 '순영'으로 나와 고군분투한다. 개봉 당시 박찬욱 감독은 "묵시록적인 비전을 담고 있는 영화들이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을 만큼 세상에 많이 있지만 이것보다 더 잘 만든 영화가 언뜻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 비전이 철저하고 완결성을 가진 영화"라 고 극찬한 바 있다.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부문과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고 독일에 수출되기도 했다. 이 놀라운 상상력을 뽐내는 영화의 제작기는 '발칙한 카메라의 이면'(씨네21북스 펴냄)이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늑대소년'(2012)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이어 만든 두 작품으로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조성희가 충무로에 들어가 만든 상업영화로 전작을 통해 기괴함과 폭력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인장을 기대한 일부 평단의 실망을 받기도 한 작품이었다. 배우 송중기와 박보영을 기용해 만든 판타지 로맨스물은 확실히 전작의 의도적인 불편함과는 전혀 다른 영화로 처음부터 관객이 공감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어떤 울림이 있는 영화를 해보자는 연출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변화였다. 조성희의 말을 빌리면 제도권에서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한 어떤 타협이라기보다 애초의 콘셉트 자체가 '가족영화'였던 것. 덕분에 영화는 확장판으로 재개봉까지 하면서 706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은 군 복무로 3년 만에 복귀하는 배우 이제훈과 함께 고전소설 '홍길동'에서 가져온 캐릭터를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안티 히어로로 변용해 연출한 하드보일드 탐정물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한창 연출 수업을 받을 때 지도교수가 조성희에게 훗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고 물었을 때 '말타의 매' 같은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단다. 누아르 장르와 탐정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현실화시킨 게 바로 이 영화인 것. 본격적인 추리에 주목하기보다 고독한 청년 탐정이 과거를 극복하고 진정한 명탐정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관객에게 속편에서 제대로 된 추리 액션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 아쉬운 흥행 성적(143만명)으로 그런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승리호'(2020)는 지난해 텐트폴 시즌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을 계속 미루다 지난달 5일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늑대소년'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송중기와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는 SF 영화의 불모지로 불리는 한국 영화계에서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를 야심차게 표방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제작비를 가지고도 화려한 CG와 VFX를 선보인 점은 호평 받아 마땅할 것이다. 거기에 스페이스 오페라 혹은 사이버 펑크 같은 SF의 많은 하위 장르가 가진 특징을 잘 살려냈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OTT 개봉으로 승리호가 구현해낸 우주 공간의 스펙터클과 사운드를 완벽하게 느낄 수 없는 건 내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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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지나치게 클리셰를 남발한다든가, 억지스러운 유머 코드라든가, 신파 장면의 아쉬움이라든가 비판할 지점이 분명 있다. 그러나 나는 '승리호'라는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는 '남매의 집'부터 시작해 '짐승의 끝'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거쳐 '승리호'로 이어지며 확장하고 있는 '조성희 월드'의 작품 세계가 더욱 흥미롭다. 영화평론가 듀나의 지적처럼 조성희의 영화들은 대부분 미성숙한 아이들의 상상과 경험을 기반으로 이뤄져 있다. 거기에 아이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과 망가져 가는 세계 속에서 지켜내야 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다뤄왔다. 무엇보다 그는 리얼리즘을 미덕으로 삼았던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장르적 확장에 앞장서왔다. '승리호'가 K-SF의 시발점이 될지 보다 조성희라는 드문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인장을 흐리지 않고 지켜나갈지 나는 몹시 궁금하다.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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