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경남 산청 수선사, 지리산 자락 고요한 절집…지친 마음에 쉼표 하나 찍다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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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2   |  발행일 2021-04-02 제13면   |  수정 2021-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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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사 연못과 템플스테이 건물. 터를 닦다 보니 돌이 나왔다. 돌을 빼내고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모았더니 저절로 연못이 되었다.

"이제 눈은 끝이겠지?" 며칠 전 혼잣말처럼 물었다. "4월에도 가끔 오잖아요." 후배는 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위로라는 것도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경남 산청 읍내를 휘도는 경호강변에 벚꽃이 화사했다. 강변의 산자락에는 산벚이 하나 둘 희미한 얼룩으로 번져 있었다. 때가 되었구나 했다. 꽃이 피면 눈을 잊는다. 읍내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오를 지나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 사람들은 강변의 공원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옷차림은 가벼웠고 움직임은 경쾌했다. 봄이 왔다.

30여년 전부터 여경스님이 손수 터전 일궈
정면 3칸 극락보전·요사채 소박한 모습 간직
아담한 연못따라 오솔길·산책로·쉼터 조성
템플스테이 건물 옥상 찻집, 연못이 한눈에


◆ 수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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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서 내려다본 수선사 연못. 때가 되면 인연(人蓮)으로 가득 찰 것이다.

산청 읍내 서남쪽에 기산(機山)이 있다. 지리산 웅석봉의 북릉이다. 읍내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강과 함께 휘돌면 와락 커다란 산이 육박해와 과연 산고수청(山高水淸)의 산청이구나 싶다.

경호강을 건너 산을 오른다. 큼직한 주택들과 펜션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길은 적이 가파르다. 촌락의 끝집을 지나쳤다는 생각과 함께 수선사(修禪寺)라 새겨진 커다란 바윗돌을 본다. 그로부터 이륙하듯 올라 선 주차장 가장자리에 키 큰 벚꽃나무가 요요하다. 주차장 옆에는 박공지붕의 간결한 건물 하나가 비탈진 땅 위로 돌출되어 있다. 화장실이다. 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화장실이다. 너무 깨끗해서 걸음을 돌아보게 된다.

화장실 맞은편에 절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계단 위에 가늘다 할 만한 소나무 기둥에 등 굽은 보를 올린 문이 있다.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다가 이곳으로 와 대중의 문이 된 듯하다. 문에는 여여문(如予門) 현판이 달려 있다. 평등한 세상, 고요하고 평온한 세상으로 가는 문이다. 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별 불만 없이 저 요요한 벚꽃이 부르는 비탈길로 오른다. 연못이 펼쳐진다. 산책로가 위태롭게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어디선가 맑은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연못 옆에는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이 서있다. 템플스테이 공간이라 한다. 옥상은 찻집이다. 옥상 난간에 하얀 파라솔들이 조르라니 서서 연못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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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지리산 웅석봉 북릉 기산 자락에 위치한 수선사.

연못의 가장자리로 난 짧은 오솔길을 따라 다시 오른다.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경 읽는 소리가 들린다. 잔디밭 가운데에 사각의 디딤돌이 한 줄로 곧게 놓여 있고 그 끝에 정면 3칸의 극락보전이 자리한다. 절집의 전체 규모에 비해 작지만 어쩐지 안도감이 든다. 오른편 마당 언저리에는 소박한 모습의 요사채가 늘어서 있다. 각 실들에는 목우실(牧牛室), 추사의 글씨를 모각한 무량수각(無量壽閣), 다담실(茶談室), 성적당(惺寂堂), 선설당(禪說堂)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요사채 앞에는 큼지막한 사각의 돌수조가 놓여 있고 석등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 왼편의 마당에는 연못이 있다. 연못은 돌로 수놓은 마음 심(心)자 모양이다. 법당 뒤편에서 솟아나는 깨끗한 샘물이 연못으로 흘러들어온다고 한다. 마음이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마음 가운데에 수형 고운 배롱나무가 서 있고 그 마음을 지키는 듯 주변으로 멋있는 소나무들이 자리한다. 연못 뒤에는 자연석 위에 올라 선 삼층석탑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지는데, 과연 불국사의 석가탑을 본 떠 만든 것이라 한다.

극락보전 옆에는 샘물이 있고 뒤편에는 삼성각이 숨은 듯 자리한다. 작지만 텅 비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 계류가 흐른다. 샘물과 계류는 극락보전의 양쪽에서 보이거나 감춰진 수로를 따라 흘러 수선사 곳곳의 크고 작은 돌확과 연못으로 모이고 또다시 흐른다. 흐름과 멈춤을 거듭하는 물의 형상은 더없이 고아하고 물소리는 숨죽임에 가깝다.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한 이 너른 구역은 다양한 사물들에도 불구하고 비움 또는 허(虛)의 느낌을 준다. 그윽하고 안온하고 평화롭다. 성적당 작은 창 아래 놓인 벤치에 한 사람이 오래 앉아 있다. 고요히 깨달음을 얻는 방, 그 벽에 기대 한없이 고요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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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과 샘터. 샘물과 계류는 극락보전의 양쪽에서 흘러 수선사 곳곳의 크고 작은 돌확과 연못으로 모이고 또다시 흐른다.

◆ 시절인연

수선사를 지은 이는 여경스님이라는 분이다. 30여 년 전,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마친 여경 스님은 전북 남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스님으로부터 이곳의 땅을 사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당시 이곳은 오가는 버스도 없는 골짜기였고 한 스님이 벼농사를 짓던 다랭이 논이었다. 무엇보다 여경 스님에게는 그만한 자본이 없었다. 그러나 먼저 출가한 친동생 스님의 도움으로 여경 스님과 이곳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조그마한 집을 지어 살면서 조금씩 불사를 일으켰다. 논을 사서 터를 닦다 보니 돌이 나왔다. 절에 사용된 돌은 전부 논에서 나온 것들이다. 돌을 빼내고 절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모았더니 저절로 연못이 되었다.

정원만 있고 법당이 없던 이곳에 불심이 두터운 분들의 시주가 연이어졌다. 덕분에 수선사가 생긴 지 약 15년 만에 법당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선사라는 이름도 지었다. 선을 닦는다는 뜻이다.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적당한 나무를 싣고 가는 차를 발견했다. 그렇게 법당 앞을 장식하는 솔 한 그루가 생겼다. 누군가 가죽나무를 잔뜩 주었다. 계획에도 없던 원두막을 연못에다 지을 수 있었다. 어디선가 광산을 개발하면서 너도밤나무 군락지를 벌목한다고 했다. 스님은 그것을 가져다 연못에 목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져 오늘의 수선사가 되었다.

극락보전의 디딤돌 길은 옥상 찻집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 찻집의 이름은 '커피와 꽃자리'. 찻집에서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맑은 물 위에 수련 잎이 떠있다. 연못 안 산책로는 환형으로 돌아 나간다.

산책로 입구에 '시절인연(人蓮)'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재치 있는 이름이다. 불가에 시절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수선화가 피고, 수련이 피어나고, 초롱꽃과 인동초가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연못 가득 연꽃이 피어나고 마음연못에선 배롱나무 꽃이 피어날 것이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 봄이 왔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간다. 함양 분기점에서 통영방향으로 빠져나가 산청IC에서 내린다. 60번 지방도 꽃봉산로를 타고 산청 군청 방향으로 가다 GS주유소가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1001번 웅석봉로를 따라 가면된다. 주차장은 넉넉하며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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