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犬兎之爭(견토지쟁)의 최후 승자는 토끼도 개도 아니다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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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6   |  발행일 2021-04-16 제23면   |  수정 2021-04-1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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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문재인정부가 뭇매를 맞고 있다. 글이나 말로 행세깨나 하는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회초리 들고 눈 부라린다. 그런데 어떡하나. 더 맞아야겠다. 몰매질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지만, 회초리를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다. 선거 참패 원인은 들먹이지 않겠다. 하나, 싸움에 진 이후의 태도가 유감 천만이다.

첫째, 왜 남 탓 하나. 고질병이다. 남 비판하면서 자신의 불의를 감추고 책임도 면하면서 위선적 정의를 드러내려 한다. 회칠(灰漆)한 정의의 사도가 수두룩하지만 똑똑한 국민은 이미 정체를 다 안다. 왜 국민이 불공정과 위선을 따지겠나. 상대적으로 더 정의롭고 덜 부패하지 않냐고?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게 불의와 무능, 패배의 면책 사유는 아니다. '상대적 우월' 정도로 얄팍하게 위로받을 생각 말라. 언론 탓? 물정 모르는 20대 탓? 검찰 탓? LH 탓? (우군인 줄 알았는데 LH 의혹 터트린) 민변과 참여연대 탓? 재보선의 민심이 뭔가. '민주당이 싫다'는 것이었다. 왜 남 탓하나. 불과 4년 전 촛불민심의 심판을 받은 국정농단 세력이 심판자의 외양을 갖춘 것은 극적 반전이지만, 진보엔 치욕이다. 촛불 들고 박근혜정부 징벌한 20대가 문재인정부 심판한 바로 그들이라니…. '너희가 심판한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는 보수의 조롱이 협박으로 들리지 않는가. 그런데도 남 공격하는 데 헛심 쓰고 있으니 종아리를 단단히 걷어야겠다.

둘째, 분열. 김종인이 국민의힘을 떠나면서 남긴 '예언'이 이뤄지고 있다. "여권은 반드시 분열할 테니 잘 활용하라." 김종인 입의 침도 마르기 전에 분열의 레토릭이 낭자하다. '권리당원 일동'의 성명은 대표적 참상이다. 선거 참패에 반성문을 쓴 초선의원들을 비판한다는 게 도를 한참 넘었다. '쓰레기' '배은망덕' '초선의원의 난' 같은 막말을 쏟아냈다. 오죽했으면 "폭력적으로 쇄신을 막는 행위를 좌시하지 말고 소수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젊은 의원들을 보호하라"(조응천 의원)는 호소까지 하겠나. 이철희 전 의원은 정무수석 자리에 앉기도 전 타깃이 됐다. "출세하려는 자여 이철희처럼 호박씨 까라. 그럼 세상을 다 가진다"고 비아냥댔다. 민심을 잘 받들겠다고 무릎을 꿇은 지 열흘도 안 돼 자중지란에 빠진 여당. 아사리판 같은 견토지쟁(犬兎之爭)의 최후 승자는 도대체 누가 될까. 착각하지 말라. 토끼도 사냥개도 아니다. 횡재는 객(客)의 몫이다. 우화의 경고다. 그렇게 맞고도 '대깨문' '조국' 싸움으로 날밤을 보내니 더 맞아야겠다. "문파의 강성 지지자들을 내버려두면 문재인은 물론 민주당도 죽일 것이다. 당장 해체하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셋째, 새로운 것이 없다. 쇄신의 무대에 옛 인물이 득실댄다. 새 가치와 정책, 새로운 당 운영방식과 정치문화의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사람이 없다. 혁신을 가장 웅변적으로 보이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할 만한 사람은 이미 다 내쳤다. 그나마 남은 알토란같은 인물들은 '팬덤'의 독한 언설에 상처받아 숨 숙이고 있다. 지지자만의 커뮤니티에 갇힌 팬덤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팬덤을 깨고 커뮤니티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짜 민심과 만난다. "서울시장 선거에 져도 비포장도로로 가면 된다"(이해찬 전 대표)고? 몸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비대해진 거여(巨與), 비포장도로로 쭉 가다 보면 내년 초 부고장 받는다. 공정과 평화를 외친 문재인정부의 실패는 아픈 실패다. 좋은 가치가 훼손되어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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