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이재용 사면의 효용성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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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9   |  발행일 2021-04-29 제22면   |  수정 2021-04-29 08:47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 서막
바이든, 삼성 미국투자 종용
왜 국민 70% 사면 찬성할까
법과 원칙의 가치 훼손보다
국가이익 크다는 판단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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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983년 2월 도쿄 오쿠라호텔. 74세의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글로벌 삼성'의 초석을 놓는 순간이었다. 반응은 냉담했다. 심지어 인텔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이병철의 통찰력은 남달랐다. '21세기 석유' '미래산업의 쌀' 반도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결정적 동인(動因)은 1982년의 실리콘 밸리 방문. 휴렛팩커드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업무처리 하는 걸 보고 충격 받았다. 이 회장은 귀국 후 반도체 사업 기획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7개월 만에 16절지 100매의 기획안이 완성되며 삼성 반도체 사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만약 그날의 '도쿄 선언'이 없었다면? 상상에 맡긴다.

다시 2021년.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5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선언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무력화하겠다는 야심이 투영된다. 경제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그 한가운데 한국이 있다. D램과 낸드 플래시는 우리가 압도적 1위.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는 다르다. 팹리스(설계)는 미국, 파운드리(위탁생산)는 대만 TSMC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TSMC는 110조원의 공격적 투자 계획을 밝혔고 인텔은 파운드리 생산 재개를 선언했다. 삼성의 파운드리 진격에 제동이 걸리는 형국이다.

바이든은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를 종용한다. TSMC는 이미 바이든에 화답했다. 삼성도 결단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한데 총수는 교도소 유폐(幽閉) 중.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되며 '옥중 경영'도 불가능한 상태. 기십조원에 이르는 설비투자는 오너의 결심이 필요하다. 전문 경영인의 판단으로 치환될 순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동맹과 공급망을 조율할 조타수(操舵手)다. 조타수 부재는 필연적으로 예기치 못한 위기와 위험을 야기한다. 메모리 반도체 '한국 아성'이 영원할 것 같은가. 1980년대 글로벌 반도체 리더였던 일본의 존재감이 왜 미미해졌을까. 1990년 37%였던 미국의 반도체 제조시장 점유율은 왜 12%로 쪼그라들었을까.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는 패륜이었지만 나라경제와는 함수관계가 없었다. 이재용 유폐는 법집행이란 정당성이 확고하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산업과 국가경제 쪽으로 앵글을 돌리면 관점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편에선 이 부회장의 백신 역할론이 나온다. 외교와 비즈니스의 불문율은 'give and take'. 반대급부가 따라야 한다. 화이자·모더나 백신 확보는 바이든의 암묵적 지원이 중요하다.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바이든의 마음을 움직일 카드다. 이재용은 화이자 CEO와도 친분이 있다.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자 '코어 테크'다. 우리 경제엔 화수분이다. 지난해 말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6%. 중국은 2030년까지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미국이 중국을 눌러주는 지금이 초격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다. 특정인의 사면으로 얻는 국민이익이 '법 앞의 평등'의 가치보다 월등히 크다면 법치의 정합성(整合性)은 훼손되지 않는다. 여론은 70%가 이재용 사면에 찬성이다. 국민이 법과 원칙, 공정에 눈을 감아서일까. 아니다. 이 부회장 사면의 효용성을 알기 때문이다. 공허한 원칙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다. 이재용을 계속 유폐하기엔 한국경제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도식적 '법 앞의 평등'보다 사면·복권이 더 대승적이며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을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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