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여고괴담'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여고괴담'은 이전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좀처럼 사랑받지 못했던 호러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학원물과 호러 장르를 결합해 그 속에 동시대 10대 청소년들이 겪는 고민과 그들이 처한 사회의 부조리까지 담아내면서 개봉 당시 큰 반향을 불러 모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힘겨워하는 여고생들과 그들을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어른들의 모습은 영화 밖 현실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로 23년을 이어가고 있는 호러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한국영화계에서 현재까지 '여고괴담'이 유일하다. 옛날 영화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여전히 혁신적인 변화를 갖지 않고 오히려 더욱 나빠져가는 학교와 그 학교가 속한 우리 사회를 꾸준히 날카롭게 벼려왔다는 점에서 동시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해온 지금-여기의 영화가 또한 '여고괴담'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외침
1998년 첫 개봉작 입시위주 교육 비판
관객 250만명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
2009년 10주년 기념 5번째 작품 선봬
젊은 감독·신인 여배우 등용문 화제
이달 개봉한 이미영 감독 연출 '모교'
4편이어 6번째 작품 나온 김서형 눈길
제작사 공언한 10편 이어질지도 관심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포스터. |
'여고괴담 사관학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이 시리즈를 통해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여고괴담 1'을 연출한 박기형 감독은 단편 '과대망상'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이후 '비밀'과 '아카시아'를 만들었다. '여고괴담 2'를 연출한 김태용·민규동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 동기로 이후 김태용은 '가족의 탄생'과 '만추'를, 민규동은 '내 아내의 모든 것'과 '허스토리'를 만든다. '여고괴담 3'을 연출한 윤재연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2기로 이후 박한별을 다시 기용해 '요가학원'을 차기작으로 내놓았다. '여고괴담 4'를 연출한 최익환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여고괴담 1'에서 조연출을 맡았었다. '여고괴담 5'를 연출한 이종용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연출부 출신으로 '공동경비구역 JSA' 조연출을 지냈다. '여고괴담 6'을 연출한 이미영 감독은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기획상을 수상했던 영화 기획자로 '거북이 달린다' '남쪽으로 튀어' '비밀은 없다' 등을 제작한 바 있다.
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
한국영화 최초이자 최장수 호러 프랜차이즈 무비가 된 '여고괴담'을 제작한 이는 씨네2000 이춘영 대표였다. 영화인회의 이사장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달 11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그의 영결식은 유튜브로 생중계가 된 덕에 코로나19로 미처 빈소를 찾지 못한 많은 영화인들도 마지막을 함께 애도할 수 있었다. 스크린 쿼터나 독과점 이슈 같은 궂은일들에 해결사를 자처했던 것도 그였다. 고인은 생전 언론사 인터뷰 같은 공식 석상은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입버릇처럼 '여고괴담' 시리즈를 10편까지 만들겠다고 공언했단다. 그가 얼마나 이 시리즈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도전과 실험을 자유롭게 저지를 수 있는 저예산 호러물의 미덕을 일찍이 간파했던 한국영화계의 맏형은 이제 유작을 남기고 세상에 없지만 시리즈는 고인의 바람처럼 계속되길 빈다. "잘 가세요, 두목!" 한국영화의 한 시절이 이렇게 가고 또 온다.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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