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 사이] 어떻게 살 것인가?

  • 윤일현 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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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1 07:49  |  수정 2021-06-21 08:00  |  발행일 2021-06-2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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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아는 학생이 카톡으로 자신의 심경을 몇 차례 보냈다. 어디에 있든 재미가 없고 공부도 하기 싫다고 했다. 답답하고 우울할 땐 게임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곧 시들해진다고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했다. 학생과 엄마를 함께 만났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서가에서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뽑아 예전에 내가 읽으면서 줄 친 부분들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스의 마르크 블로크는 독일의 침공으로 붕괴하는 프랑스를 경악하며 지켜보았다.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메시지나 신문을 배달하는 하찮은 임무부터 시작했지만, 후에는 그룹 대장으로 진급하여 부하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리옹 교외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연합군의 메시지를 해독하거나 암호로 만들어 리옹 시가지에 있는 요원들에게 전달하는 일 등을 감독했다. 1944년 3월 그는 비시 정부의 친독 의용대에 체포되어 게슈타포에 넘겨져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다. 1944년 6월16일 게슈타포는 독일에 저항한 26명의 투사들을 생 디디에 드 포르망이라는 작은 마을 외곽 공터로 데려가 총살했다. 그들 중 두 명은 등에 총알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죽은 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가장 놀라운 증언은 최연장자인 58세 마르크 블로크와 최연소 16세 어린 대원의 대화와 처형 광경이다. 마르크 블로크는 반복적인 고문으로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위엄과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총살 집행 병사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어린 소년이 두려움에 떨며 "총에 맞으면 아프겠지요?"라고 말했다. "아니, 얘야 아프지 않단다." 그는 소년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팔을 뻗어 소년의 손을 감싸 쥐었다. 기관총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는 "프랑스 만세!"라고 외치며 쓰러졌다. 마르크 블로크, 그는 행동하는 역사학자였다.

줄 친 부분을 함께 읽으면서 묻고 답하며 대화를 나눈 후 말없이 학생을 바라보았다. 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죽음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힘든 선택 앞에서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고 당당한 최후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가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우리는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바쳐야 하며, 삶을 마무리할 때 멋지게 죽어야 한다고 했다. 헤어질 때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학생에게 주면서 좀 어렵겠지만 정독해 보라고 했다. 젊은이도 간혹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게 사색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하면 새로운 힘과 의욕이 생겨날 것이다.

윤일현 <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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