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열아홉, 끔찍한 비밀 간직한 소녀의 위태로운 홀로서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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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02   |  발행일 2021-07-02 제39면   |  수정 2021-07-02 08:37

열아홉

독립을 꿈꾸는 소정(손영주)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아홉 소녀다. 하지만 폭력적인 아빠가 떠난 임대 아파트에서 병든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좀처럼 벗어날 길이 없다. 소정은 늘 상상한다. 스무 살이 되면 엄마만 남은 집에서 멀리 떠나 음악이든 뭐든 하며 살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갖겠다고.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소정은 아빠와 다시 살게 될까 봐 두려워 엄마의 시신을 욕조에 숨긴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그녀는 끔찍한 비밀을 간직한 채 엄마의 시신과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 '열아홉'은 집과 학교, 생활 그 어느 것 하나 안정되지 않은 소정의 위태로운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놓여 있는 열아홉 소녀에게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겨울의 바람에 살을 에듯 쓰라리다. 엄마와 집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직은 홀로 설 준비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소정의 성장을 재촉하는 건 크고 작은 시련이다. 버림받고 체념하고 적응하기의 과정을 통해 소녀는 어른이 되어간다. 살얼음판 같은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은 학교 동급생 성현(정태성)도 비슷한 처지다. 소정과 마찬가지로 성현에게 집은 언젠가 벗어나고 싶은 굴레와 같은 공간이다. 동시에 그들에게 현실적인 고민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공장 실습에서 우연히 만나 음악을 매개로 가까워진다. 음악이 소정에게 유일한 꿈이자 도피처인 것처럼 성현 역시 음악을 꿈꾸며 그 꿈을 향해 다가가려 한다.

카메라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부재 속에서 함께 관계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두 사람을 응시한다. 성장영화의 외피 안에서 사회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가볍게 지적하는 한편으로 간결하고 건조한 묘사로 소년소녀의 아슬아슬한 내면 안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소정의 홀로서기를 희망이나 절망으로 쉽게 명명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자기 몫의 불행에 어느새 체념한 것처럼 늘 표정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소정의 얼굴에서 언제쯤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을지를 말이다. 10대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를 2008년의 부동산 현실에 녹여낸 우경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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