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야권 대선 주자 셋 키운 文 대통령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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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9   |  발행일 2021-07-19 제26면   |  수정 2021-07-19 07:27
文이 발탁한 범야권 주자들
재집권의 장애물이 될 경우
文책임론까지 거론 가능성
사상 초유의 사태로 몰리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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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요즘 민주당 대권 주자들은 '문심'(文心·문재인 대통령 의중) 얻기 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후반기에도 공고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다 유력 주자 가운데 확실한 '친문' 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열성 당원들의 환심을 사려는 구애 측면도 있다. 청와대는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통령은 중립"이라고 한다. 또 "대통령을 정치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한 참모의 경우 "청와대는 선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했다. 입에 발린 소리다. 국정운영의 연속성은 물론이고, 퇴임 대통령의 안전 문제까지 걸린 대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물론, 현직 대통령으로서 후계자가 될 여당 후보들의 경쟁에 대해 '중립' '무관심' 운운할 수는 있다. 속마음이 있겠지만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대신 범야권 후보 가운데 세 사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은 정말 알고 싶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셋 다 문 대통령이 발탁할 때 청와대는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능력과 성품, 국정철학을 극찬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에게 "살아 있는 권력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고 했다. 최재형에겐 "행정부문에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 관행을 잘 살펴 달라"고 했다. 김동연에겐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능력을 겸비한 유능한 경제전문가"라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이 정말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내세워 손발을 묶으며 끝내 내쫓았다. 최재형이 정말 행정부문의 비리인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을 파헤치니 민주당 강성파들을 내세워 퇴진을 압박하고 검찰이 고발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김동연이 정말 거시경제 통찰력을 바탕으로 소득주도성장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제동을 걸자 청와대 참모들이 견제에 나섰다.

윤석열은 범야권 지지율 1위로 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유력 대권 주자로 자리 잡았다. 최재형은 제1야당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하면서 범야권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김동연은 "정치를 바꾸겠다"라며 제 3지대에 둥지를 틀었다. 셋의 대선 판 등장은 문 대통령이 발탁한 뒤 탄압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윤석열은 문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박영수 특검 활약으로 검사로서의 명예회복 정도를 한 뒤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집권 후 적폐몰이 수사를 계속 맡기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하고 검찰총장 자리에 앉혔다. '유력한 대권 주자 윤석열'을 만든 문 대통령의 책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하는 윤석열을 몰아내기 위해 법무부 장관에 공격성 강한 추미애를 앉혔다. 무려 1년 동안 인사권자가 방치하는 속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충돌했고, 윤석열의 정치몸집이 커졌다. 진보진영에서 그들의 재집권 플랜에 차질을 준 문 대통령에게 책임론을 제기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아마 지금은 '문심'이 필요한 민주당 주자들이지만 실제로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눈 앞의 강력한 적들을 만들어 낸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지 모른다. 그건 진보진영 안의 일이라고 해도, 국민 입장에선 문 대통령 자신이 국정운영의 핵심 요직에 발탁한 세 사람이 줄줄이 야권 대통령 후보가 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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