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현대판 예송논쟁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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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5   |  발행일 2021-08-05 제22면   |  수정 2021-08-05 07:20
황당 시비·한심한 논쟁 허다
국민재난금 지원 범위 두고
두 달 넘게 여야·당정 갈등
본령 비켜간 변죽 울리기에
국력과 시간 허비해야 하나
논설위원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2019년 세계 음원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클래식 음악가다. 그가 OST에 참여한 '노매드랜드'와 '더 파더'가 올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인구에 회자됐다.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네오-클래식'으로 명명되지만 뉴 에이지 계보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작곡가 조지 윈스턴이 뉴 에이지 뮤직의 원조다. 실제 '노매드랜드'의 삽입곡 'Low mist'와 'Golden butterflies'는 조지 윈스턴의 곡들과 놀랍도록 닮았다. 조지 윈스턴의 대표 앨범은 '디셈버'. 한데 '디셈버' 타이틀이 달린 앨범엔 정작 '디셈버'란 곡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무명의 하루키를 '일타 작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한국에선 '상실의 시대'란 표제를 달았지만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노르웨이의 숲'엔 노르웨이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최민식·전도연 주연의 1999년 영화 '해피 엔드'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앨범 '디셈버'에 왜 '디셈버'가 없어? 소설 '노르웨이의 숲'엔 왜 노르웨이가 나오지 않아? 해피 엔딩이 아닌 스토리에 왜 '해피 엔드'란 제목을 갖다 붙였어? 이런 시비를 건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선 황당한 시비, 한심한 논쟁이 허다하다. 안산 쇼트커트 논란처럼.

# 재난지원금 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 결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코로나19 국민재난지원금은 고소득자를 뺀 88%에 25만원씩 지급하는 걸로 종결됐다. 세금 많이 내는 게 죄냐, 선정 기준이 고무줄 잣대다, 왜 맞벌이와 1인 가구는 불리하냐는 논란이 이어졌다. 선별 지원을 주장해온 언론까지 국민을 12%와 88%로 갈라치기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면 어쩌라고?

한심한 건 별것도 아닌 사안을 두고 여야, 당정이 두 달 넘게 논쟁을 벌였다는 거다. 재원이 부족하면 차라리 22만원씩 전국민에게 주는 게 깔끔하고 공정하다. 지급 대상자를 가려내는 선별 비용만 45억원이다. 상위 12%에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으려고 국가예산과 인력까지 들여야 하나. '선별 지원'에 목을 매는 정부가 아동수당은 왜 100% 지급하나. 부자들도 아이 열심히 낳으라는 메시지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충직한 곳간지기인 양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끝까지 딴지를 걸었다. 그렇게나 알뜰히 나라 살림을 살 요량이라면 재정준칙 시행부터 앞당기는 게 정도(正道) 아닌가.

# 변죽 울리기의 전형 여가부 존폐 논란

여성가족부 존폐 논쟁도 본령을 비켜간다. 여가부는 중앙부처 중 최저예산·최소인력의 초미니 조직이다. 없애봐야 구조조정 효과도 없다. 부질없는 시비를 벌일 게 아니라 실질적 성평등 제고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저임금 종사자 비중은 26%로 남성(11%)의 두 배가 넘고,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1위다. 대한민국 헌법 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은 여가부 폐지 주장에 앞서 헌법적 책무를 다했는지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조선시대의 가장 한가하고 한심한 논쟁이 대비의 복상(服喪) 기간을 두고 벌어진 예송논쟁이다. 그런데 어쩌나.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디지털 시대에도 현대판 예송논쟁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홍심을 찌르지 못할지언정 변죽 울리는 논쟁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진 말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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