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분권과 대통령의 리더십

  • 이상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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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1   |  발행일 2021-10-21 제21면   |  수정 2021-10-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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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여의도정책연구원 지방 분권정책위원장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성숙한 민주주의와 자생적 지역발전을 위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중앙집권식 국정운영방식으로 지방의 권한이나 재원의 사용은 제한되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주도발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하여 지방은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위축되어 왔으며, 급기야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일부 지역은 지방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정치경제체제와 국정운영방식이 유지된다면 장기적으로 경제적 기반 약화와 함께 국가경쟁력은 저하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2016년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안정적인 대국민 행정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지방자치가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자치가 정치적으로 전격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감성은 풍부했으나,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한 중앙의 권한과 기능 이양을 위한 체계적인 접근과 노력이 부족했다. 이제 지방분권에 대한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이를 통해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현지성과 보충성 원칙에 입각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획기적인 기능조정이 필요하다. 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되었지만, 2013년 기준 법령상 4만6천5개 사무 중에서 국가사무가 3만1천161개(68%), 지방사무는 1만4천844개(32%)에 불과하며, 2000년부터 지금까지 사무의 지방이양 건수는 2천749건에 불과하다. 이는 중앙집권적 국정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사고, 중앙정부의 권한과 조직 축소에 대한 지속적인 설득과 적극적인 저항에 기인한 바가 크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주재원 확충을 통한 재정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재정에서 지방세의 비중(23%)과 지방정부의 세출 비중(60%)의 큰 격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지방분권이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의 실질적 이양보다 보조 사업을 통한 의존 재원 이양 중심으로 이루어져 실질적 재정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재정개혁 또한 현재의 국민의 조세부담률과 중앙·지방 간 가용재원 배분비율을 변경하지 않는 재정 중립형 개혁으로 추진되어 실질적 지방재정 확충효과는 없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대등관계에 기반한 제도정비와 행정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사무의 비중은 32%에 불과한데 재정지출의 비중은 60%를 차지하는 현재의 중앙정부 위주의 기능과 행정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던 현 정부에서도 치매국가책임제를 주장하면서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요구하고 과학관·연구시설 등 국가기관이나 국립시설에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강요하고, 오히려 특별 행정관청의 권한은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부들이 지방분권 실천을 공약하고 추진해 왔다. 집권 초기에는 지방분권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지만,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 이양에 대한 관료들의 조직적인 저항과 지속적인 설득에 포획되어 지방분권정책은 형식적인 보여주기 식으로 정권과 함께 끝이 난다.

이는 대통령의 중앙집권적 국정운영에 대한 유혹과 중앙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에 기인한 바가 크다. 따라서 국가발전의 핵심동력으로서 지방분권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며, 중앙정부의 기능과 재원 이양에 대한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원화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은 시대적 요청이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기본원리다. 오랜 국정운영 시스템을 바꾸고 과도하게 집중된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의 이양을 통하여 지방분권의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결단이 필요하다. "왜 대통령의 권한과 돈을 자치단체장에게 주어야 합니까?"라는 달콤한 유혹과 조직적인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산 같은 진중한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이상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여의도정책연구원 지방 분권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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