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독만권서·행만리로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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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9   |  발행일 2021-11-09 제31면   |  수정 2021-11-09 07:15

예부터 선인들은 몸·마음의 먼지와 독기 등 나쁜 기운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책읽기'와 '걷기'를 활용했다. 그래서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가 나왔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나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시도해 본 분들은 잘 알 것이나 시도조차 안해본 분에게는 그저 바람소리일 뿐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야외에서 놀기에도 좋은 시기다. 하지만 그래도 가을은 명실상부한 '독서의 계절' 아닌가. 맑은 하늘, 적당한 기온에 서늘한 바람…일년 중 딱 10월 전후로 이맘때 두어달 뿐인 귀한 시기이다. 청명한 날 창문을 활짝 열고 평소 가까이 하지 못했던 책을 꺼내 펼쳐보게 된다. 새로 나온 책 중에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봐 두었다가 서점에 가서 사면 된다. 이전에 읽었지만 오래돼 내용이 가물가물한 것은 한 번 더 봐도 좋다. 이른바 '명작 순례'나 '고전 읽기'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노트에 간단한 소감글이라도 남기면 금상첨화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기억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독서하기도 좋지만 걷기에도 좋은 계절이 요즘이다.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자동차 얘기를 나누다가 동석자 중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동 수단이 뭐예요?"라고. 내가 주저없이 "BMW입니다"라고 답하자 다들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는 "부럽네요"라고 했다. 곧바로 나는 부연설명을 해야 했다. "그 비싼 외제차 BMW가 아닙니다." "아시는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저의 BMW는 버스(Bus), 메트로(Metro), 워킹(Walking)의 줄임말입니다. 버스와 지하철 이용하고, 걷는 거지요."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BMW는 썩 괜찮은 이동 수단이다. 도시인은 신체 회로를 제대로 돌리려면 하루에 최소한 1만보를 걸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1만보를 채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두 시간 가까이 걸어야 가능하다. 특정 목표지점을 정해놓고 작심하고 걸어야 한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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