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16] 중국 스좌장 융흥사(상)…1500년전 모습 그대로…중국 10대 고찰서 영성을 느끼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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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27   |  발행일 2021-12-27 제21면   |  수정 2021-12-2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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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흥사 대비각에 있는 청동 천수관음상.

아주 오래된 물건이나 예술품, 건축은 그 자체로 매우 각별하고 강력한 감흥을 준다. 그것이 옛 상태 그대로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이런 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있다. 중국 스좌장(石家莊) 여행 때 들러보았던 융흥사(隆興寺)다.

1천500년 전에 창건했다는 사찰인데, 전각 내부의 불상이나 탱화, 다양한 조각상들이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조명도 없어 매우 어둡고, 청소도 하지 않아 사람이 다니는 동선 말고는 불상 위 등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중국의 여러 사찰을 둘러보았지만 이 정도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만지는 조각상의 부분은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있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2013년의 일이니 지금은 다를 지도 모르겠다.

관람객이 없을 때 홀로 그 공간들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빛과 어둠의 조화, 그리고 침묵 속에 평소 느끼지 못하는 영성(靈性)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불상·탱화·조각상 등 문화재 보호차원에선지 먼지쌓인 채로 보존
청나라 강희제 친필현판·높이 21m 천수관음상 등 눈길 사로잡아
북송시대 처음 건립된 마니전, 고건축학자들 '최상의 작품'이라 극찬

융흥사에 가면 청나라 강희제의 친필 현판 '천왕전(天王殿)'이 걸린 입구 건물이 맞이한다. 세로 현판 '천왕전' 아래에는 가로로 '칙건융흥사(勅建隆興寺)'라는 금빛 글씨가 벽체에 새겨져 있다. 이 글씨도 강희제의 친필이다.

허베이(河北)성 성도인 스좌장 정정(正定)현에 있는 융흥사는 중국 10대 사찰에 속하는 고찰(古刹)이다. 수나라 때인 586년에 처음 건립됐다. '융흥사'라는 이름은 청나라 강희제가 1706년에 하사했다고 한다.

융흥사는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고찰이다. 융흥사가 중국의 다른 사찰보다 더 특별한 이유는 1천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풍우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길에 닳은 문화재들을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불상이나 조각상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조차 일부러 그대로 두고 있는 것 같다.

융흥사는 동진(東晉) 16국 시기 후연(後燕)의 왕 모용희(慕容熙)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지어준 용등원(龍騰苑)이 있던 곳에 지어졌다. 수나라 개국 황제인 문제(양견)가 586년 용등원을 사찰로 재건하고 용장사(龍藏寺)라고 명명했다. 그후 당나라 때 용흥사(龍興寺)로 바뀌었다가 청나라 때 다시 융흥사로 바뀌었다.

세로 600m 폭 200m 정도 되는 대지의 남북 중심축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전각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수나라 이후 당, 송, 원, 명, 청 등 시대별 문화적 특색이 살아있는 4개의 전(殿)과 5개의 각(閣), 2개의 정(亭), 1개의 단(檀) 등 건축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동방미신(東方美神)'이라 불리는 목조 관음상이 있는 마니전(摩尼殿), 높이 21m가 넘는 청동 천수관음상이 있는 대비각(大悲閣), 통나무로 제작한 7.4m 높이의 미륵불상이 있는 자씨각(慈氏閣), 높이 7m가 넘는 대형 윤장대가 있는 전륜장각(轉輪藏閣)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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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흥사 목조 관음상.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산과 암석, 파도, 나한, 동물 등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오른쪽 아래가 관음보살상이다.

◆'동방미신' 목조 관음상

석가모니불상을 모신, 대웅전 격인 마니전은 북송시대(1052년) 처음 건립된 전각이다. 융흥사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전각인 마니전은 고건축학자들이 최상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건물이기도 하다.

마니전은 흔히 보는 법당 건물과는 형태가 다르다. 중층 구조이지만, 법당 안은 트여 있는 상하 통층인데, 전체 골격은 십(十)자형이다. 송나라 시대 유행한 건축양식으로, 돌출된 부분이 거북 머리처럼 생겼다고 귀두옥(龜頭屋)이라 불렀다. 20세기 고건축학의 태두인 건축사학자 량쓰청(梁思成)은 '예진극품(藝臻極品)'이라 평가했다. 예술의 가치로 보면 최상품이라는 칭찬이다.

마니전에 들어서면 어두침침한 가운데 '용상신위(龍象神威)'라는 커다란 가로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용상'은 부처님을 의미한다. 이 현판 아래로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좌상이 있다. 그 사이 뒤쪽에는 석가모니의 대표적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입상이 서 있다. 흙으로 만든 상들인데, 문수·보현보살이 석가모니를 향해 약간 틀어 앉아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좌우 벽에는 500여 년 전에 그려진 웅장하고 화려한 명대 불화들이 눈길을 끈다.

마니전에는 특히 '동방미신'이라는 극찬을 받은 목조 관음상이 있다. 석가모니불상의 뒷면으로 돌아가면 나온다. 깨끗하게 청소한 상태가 아니지만, 오색찬란하게 가산(假山)을 꾸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 관음보살이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다. 오른쪽 다리는 왼쪽 무릎 위에 얹고, 두 팔로 오른쪽 무릎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자태가 우아하고 단정하다. 3.4m 높이의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산과 암석, 물결치는 파도, 천신과 나한, 동물 등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20세기 중국 최고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은 이 관음보살상을 '동방미신'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1m 높이 청동 천수관음상

대비각의 청동 천수관음상 또한 유명하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명을 받아 971년에 만들기 시작해 975년에 완공한, 21.3m 높이의 이 대불 덕분에 융흥사는 대불사(大佛寺)라고도 불린다.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를 자랑하는 이 관음상은 3천여 명이 4년 동안 매달려 완성했다고 한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 불상은 3층에 올라야 비로소 얼굴을 바로 볼 수 있을 정도다. 관대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양쪽에 계단이 마련돼 있어 올라가서 볼 수도 있다.

몸체에는 가슴 앞에 합장한 두 손과 함께 좌우에 각각 21개의 손이 달려 있다. 42개의 손은 원래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청나라 강희제 말기에 잘려져 사라지고 현재의 손들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42개의 손에는 각각 태양(日), 달(月), 정병(淨甁), 보경(寶鏡), 금강저(金剛杵), 건곤대(乾坤帶) 등의 법기(法器)를 들고 있다. 관음보살의 큰 법력으로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불상은 비례가 균일한 늘씬한 몸매에 넓적한 얼굴, 큰 귀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불상 아래에는 높이 2.2m의 돌로 쌓은 수미좌(須彌座)가 있다.

대비각은 33m 높이의 3층 구조의 전각이다. 8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북송 초기인 976년에 완공했다. 대비각 입구에는 관음보살의 권능을 상징하는 '혜안무변(慧眼無邊)' '자운광복(慈雲廣覆)'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2016년 6월 중국우정(中國郵政)에서 '정정융흥사(正定隆興寺)' 특별우표 2매 1세트를 발행했는데, 목조 관음상을 곁들인 '마니전(摩尼殿)'과 청동 천수관음상을 곁들인 '대비각(大悲閣)'이 새겨져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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