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패션과 건축 -기준의 파괴와 다원성…비뚤게 여민 단추·휘어지고 말려진 건물, 상식 뒤집는 새로운 가치가 세상 이끈다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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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8   |  발행일 2022-03-18 제37면   |  수정 2022-03-18 09:07

여성과 남성, 겉옷과 속옷, 옳고 그름, 빛과 어둠, 선과 악 등 세상의 많은 것이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당연히 그래야 했던 기준이었다. 그러나 패션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일반화된 것과 다른 것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뚜렷하게 구분되었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하고 있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남성복스러운 남성복과 여성복스러운 여성복의 '그래야만 하는' 이분법적 구분을 따르지 않는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 구분없는 시즌리스(seasonless) 패션이 제안된다. 이전과 달리 모호해지고 다른 특성의 것들이 계속 보여진다.

치마와 드레스 입은 男·겉옷 위에 입은 속옷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된 해체주의

독특한 외관으로 관심 끈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낡은 운동화·구멍난 티셔츠…독창적 재해석
남과 다른 자신만의 것 추구하는 흐름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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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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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지성과 이성 중심의 모더니즘(Modernism)으로 20세기 서구사회가 현대화·기능화·체계화의 움직임 속에서 그에 대한 다른 관점과 반대적 가치를 제시하는 문화예술의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는 20세기 중후반 일어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운동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흐름으로 예술, 디자인,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전까지 당연히 그래왔던 규칙성, 합리성, 이성성, 효율성, 획일성, 절대성, 보편성, 객관성이 그 반대의 성격인 불규칙성, 비이성, 특수성, 다원성, 다양성, 상대성, 주관성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전의 모더니즘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인정되었던 보편적·절대적 가치는 개인의 다양성과 변화 가능성, 상호작용 등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장은 1980년대 사회문화적으로 보다 확대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된 해체주의는 건축을 중심으로 하여 패션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해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기존의 관념과 기준을 깨고(해체하고), 정해지고 안정된 틀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풀어헤치고 비틀어 보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모 반듯하고 주어진 면적을 최대로 활용하는 실용성 높은 건물들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실용성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수직과 수평이 아닌, 휘어지고 말려진 독특한 외관의 건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한 도시의 상징물이나 관광명소가 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체코 프라하의 댄싱 하우스가 그렇다. 이들은 해체주의적 성향의 대표적 건축가인 프랑크 게리(Frank Owen Gehry)의 작품이며,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도 해체주의적 건축가로 꼽힌다. 이들의 건축물은 지나치게 외관 중심적이고 공간활용성이나 경제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들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탄, 새로운 경험과 가치의 생성 등은 다른 차원으로 인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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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 야마모토의 해체적 재킷.

이러한 건축가의 비판적·예술적 도전은 패션에서도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시도돼 왔다. 남성복과 여성복, 겉옷과 속옷, 완성과 미완성이 철저히 구분된 이분법적 기준, 우아하고 품위 있어야 하며 원단의 마무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하는 당연성은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컬렉션에서 치마와 드레스를 입은 남성모델, 겉옷 위에 입은 속옷, 끝단이 뜯어져 헤어진 스커트, 소매가 네 개 달린 재킷, 앞뒤가 바뀐 코트 등 1980년대 일반적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2022년 지금은 낡은 듯 보이는 운동화, 구멍 난 티셔츠, 비뚤게 달린 단추 여밈 등이 재미있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수용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지속가능성, 업사이클링이라 하여 폐기되는 옷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하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1980년대 이와 유사한 것들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에는 불편함과 낯섦이 있었을 것이다. 해체주의적 특성의 패션디자이너는 장 폴 고티에, 마르틴 마르지엘라, 요지 야마모토 등이 있는데 이들은 패션을 통해 당연한 의상의 구조와 가치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것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깊이 조사하고 발견하고 고민한 창작물을 제안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해체주의적 관점은 현재까지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작품으로 창작되고 있으며, 다양성과 새로운 가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2000년대 이후 사회·문화·예술 발전의 근간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건축과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이한 스타일의 건축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며, 특색 있는 건축물을 보기 위한 여행도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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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해체주의적 패션디자이너 장폴고티에 컬렉션.

다양한 해체주의적 특성의 의상이나 지나치게 과감한 색감과 장식의 의상을 패션쇼나 잡지에서 보았을 때 '입지도 못하는 것을 왜 만들었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션쇼나 잡지에서 보는 소위 '지나치게 과장된' '일상적이지 않는' 의상은 디자이너가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해 그 의미를 응집하고 이미지를 극대로 표현한 것으로, 이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 '일상에서 입기 어려운' 의상의 패션쇼를 진행하는 브랜드 중 인기있는 경우를 다수 볼 수 있다. 이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이 있는, 앞서나가는 MZ세대의 가치관이 이들을 수용하고 그 감성을 공유하고 자신의 것으로 채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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