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멈출 곳을 알지 못하면

  •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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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2   |  발행일 2022-04-22 제23면   |  수정 2022-04-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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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변호사

설 연휴 직후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심하게 와서 난생 처음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귓속에 있는 평형감각을 다루는 전정신경이라는 곳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회복이 생각만큼 빠르고 완전하지 않다. 일상생활은 지장이 없으나 늘 즐기던 테니스나 풋살 같은 과격한 운동을 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사는 재미가 덜하다. 3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결과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희망과는 다른 결과가 나와 실망스러웠다. 특히 젊은 2030 세대들의 보수화 성향은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몇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책임을 지는 직책을 맡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맡고 있는 몇 군데 자리를 빨리 넘겨주고 정리할 생각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도 되도록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세상이 자기를 지나쳐 가고 있다는 느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는 옛날에 이미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는 것이 좋다. 음악도 그러해서 내가 듣는 국내가요는 서태지가 마지막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늘 보는 사람들이 좋다. 코로나가 시작된 때부터이지만 일찍 귀가해서 쌓아두기만 했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었다.

새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면면을 보노라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사람들도 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지명된 한덕수씨는 이미 15년 전에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 후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로펌에서 고액의 급여를 받으며 자문을 하였다. 최고의 공직에서 얻은 경험과 인맥을 활용하여 특정 고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겠지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아마 다시 공직에 등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다시 기회가 오자 이를 사양하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썩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경우도 그 주류인 운동권 세대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청춘을 바쳐 반독재 투쟁에 나선 것은 훌륭한 일이고 그 성과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민주화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민주주의가 주어진 전제조건이 된 사회에서는 이미 과거가 된 가치다. 오히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도덕적 오만이 젊은 세대에게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위선으로 비쳐졌다는 평가가 많다. 선거기간 중 송영길 대표가 이를 간파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후속선언들은 나오지 않았다.

퇴계 이황은 관직에의 진퇴를 거듭하면서 53번의 사직서를 썼다고 한다. 노후에는 고향에 은거하여 임금의 숱한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퇴계(退溪)'라는 말도 고향의 시냇가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유학자 화담 서경덕은 '군자가 학문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멈출 곳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을 하고도 멈출 곳을 모른다면 하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라고 하였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하는 것은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 공부는 세상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멈출 곳을 몰라 노추(老醜)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 시절이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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