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유배지에서 돌아보니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하며 산 사람일수록 욕심을 제어하기도 쉽지 않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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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06   |  발행일 2022-05-06 제34면   |  수정 2022-05-06 08:35
"살기도 오래 살았고 벼슬도 할 만큼 했으나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잘난 것도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 士京 유언호(1730~1796), 환갑 맞아 제주 유배지서 아들에게 부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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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 영산암의 벽화 '송하문동도(松下問童圖)'(부분). 은사를 찾아온 사람(오른쪽)에게 동자가 스승이 약초 캐러 간 산을 가리키고 있다. 공직 제의를 받을 경우 분수를 알고 거절(은거)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힘이 아닐까 싶다.

많은 봄꽃들이 피고 지는 요즘은 피기도 전에 지는 공직 후보자가 생기는 '인사청문회 계절'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어 많은 이들이 고위 공직자 후보로 결정돼 그 자격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어김없이 접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들의 지난 행적에 실망하고, 그들이 하는 언행에 분노하기도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청문회 과정이나 그에 앞서 갖가지 부도덕과 불법, 비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실망스러운 점은 그런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며 사과하는 경우는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뻔뻔한 태도와 언행으로 보는 이를 분노케 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 비난 속에 결국 낙마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을 접하면서 실망스러운 마음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국민의 삶을 좌우할 공직을 맡기로 결심한 이들이 왜 그렇게 국민을 실망시키는 언행을 보이게 될까.

이런 일을 당하면서 철저히 반성하고 이후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나머지 인생은 보다 부끄럼 없고 행복할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다음 글을 보자.

'올해 내가 육십일 세이니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해보면 옛날 어릴 적에는 이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을 보면 바싹 마르고 검버섯이 핀 늙은이로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지만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팔팔한 소년의 마음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상에 나온 이래로 서른 해 동안 세파에 부침하고 고락을 겪은 일들이 번개같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서, 아련히 몽롱하게 꾸는 봄날의 꿈보다도 못하다. 남들 눈으로 보면 나이가 육십을 넘겼고 지위가 정승에 올랐으므로, 나이에도 벼슬에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 겪어 온 일들을 점검해 보노라니, 엉성하고 거칠기가 이보다 심할 수가 없구나. 평생토록 궁색하고 비천하게 지내다 생을 마친 자들과 견주어 볼 때, 낫고 못하며 좋고 나쁘고를 구분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지금처럼 섬에 갇힌 몸으로 곤경과 괴로운 처지를 당하지 않고, 100세까지 살면서 편안하고 영화로운 복록을 누린다고 쳐보자. 그렇다고 강물처럼 흘러가고 저녁볕처럼 가라앉는 시간이 또 얼마나 되겠느냐. 신숙주 어른이 임종을 앞두고 '인생이란 모름지기 이처럼 그치고 마는 것인가'라며 탄식했다고 전한다. 그분의 말에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잘못을 후회하는, 죽음을 앞두고 선량해지는 마음이 엿보인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몸에 아무 일이 없고, 마음에 아무 걱정이 없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온전하게 마치는 것은 그 이상 가는 것이 없는 복력(福力)이다. 다만 굶주림과 추위에 밀려서, 과거를 치르고 벼슬에 오르기 위해 바쁘게 다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형편상 그렇게 사는 것이므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잘못을 꾸짖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제 선친께서 남겨주신 논밭과 집이 있어서, 죽거리를 장만하고 비바람을 막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분을 편안히 지키려 들지 않고, 다른 것을 찾아서 바삐 돌아다니다가 명예를 실추하고 자신에게 재앙을 끼치는 처지에 이른다면, 이야말로 이로움과 해로움,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전혀 분간할 줄 모르는 짓이다.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내 삶을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옛 시에서 말한 '만약 70년을 산다면 140세를 산 셈이다'라는 격이니 어찌 넉넉하고 편안치 않으랴.

나도 그런 삶을 살지 못 하고서 네게 깊이 바라는 연유는 방공(龐公)이 자손에게 편안함을 물려주려 한 고심과 다르지 않다.'

사경(士京) 유언호(1730~1796)가 환갑을 맞은 1790년,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아들에게 부친 편지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을 깨닫는 내용이기도 하다.

유언호는 영의정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유배와 복직을 거듭하며 굴곡진 삶을 살았다. 우의정으로 있던 그는 1789년 '조덕린(趙德隣) 사건'으로 인해 제주도에 유배되어 3년을 보냈다. 유배지에 위리안치된 채 환갑을 맞으니 각별한 감회가 일었던지, 그는 아들에게 그 심경을 담은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내용 중 '만약 70년을 산다면 140세를 산 셈이다'라는 글귀는 북송의 문학가이자 서화가인 소식(蘇軾)이 아우 소철(蘇轍)에게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하루가 이틀인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런 식으로 조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늘 매일이 오늘인 듯 느끼게 될 것이니,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곧 140세를 산 것이 된다. 인간 세상에서 무슨 약이 이런 효과를 가지고 있겠는가'라고 했던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하며 부족한 것 없이 산 사람일수록, 욕심을 제어하기도 쉽지 않고 분수를 알고 처신하기도 어렵다.

살기도 오래 살았고 벼슬도 할 만큼 했으나,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잘난 것도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내 분수 밖의 일을 탐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런 자각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을 것이다.

편지 내용에 나오는 방공 이야기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방공(龐公)은 중국 동한(東漢)시대에 녹문산에 은거했던 선비인 방덕공(龐德公)을 말한다. 그는 현산(峴山)의 남쪽에 지내면서 벼슬 추천을 여러 번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중에는 녹문산에 들어가 은거하다 삶을 마쳤다.

방공은 부인과 함께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부부가 언제나 서로 손님을 대하듯이 존중하며 지냈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높았다. 제갈량도 그를 매우 존경하며 스승으로 대했다. 그를 방문하면 반드시 침상 아래서 절을 했다. 형주자사 유표(142~208)도 방공을 여러 번 찾아 벼슬을 권유했지만 사양했다. 유표가 한 번은 "선생께서 힘들게 밭을 일구며 관록 받기를 마다하시는데, 후손에게 무엇을 남기시려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하여(천하를 다스리려고 권력을 휘두르며) 위험을 남기는데, 이렇게 홀로 있으니 편안함을 얻게 됩니다. 남기는 것이 다르기는 하나, 남길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표가 "선생은 자신의 몸은 보전하면서 어째서 천하는 보전하려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은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큰 기러기의 집은 빽빽한 수풀 위에 있는데 날이 저물어야 그곳에서 쉬게 되고, 큰 거북은 깊은 못 아래에 구멍을 내는데 역시 저녁이 되어야 그곳에서 잠이 듭니다. 사람의 취사선택과 행동거지도 그 사람의 둥지에 한정될 뿐입니다. 만물은 각자 쉴 곳이 있으니, 천하는 내가 보전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자리를 제안 받고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욕심을 자제하고 '은거'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자 힘일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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