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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 서울본부장 |
설마? 했는데 '실화'였다.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이재명의 인천 계양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선언 얘기다. 원래 계양구을 국회의원이었던 전 민주당 대표 송영길이 서울시장에 도전하려고 금배지를 떼기로 작심할 무렵부터 이재명이 그곳 보선에 출마할 거란 말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반신반의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대권에 도전했다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패배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나설 수 있을까. 둘째, 본인이 시장을 지내면서 "단군 이래 최대 치적" 사업이었다고 자랑한 대장동이 속한 성남(분당구갑)에서도 보선이 있는데 이를 팽개치고 인천으로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재명은 보선에 나섰고 인천으로 갔다.
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와 명분을 댔지만 속셈은 뻔하다. 선거판 초고속 재등장은 '방탄조끼'가 급히 필요해졌고, 엉뚱한 인천행은 그 조끼를 구하기 쉽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대선이 끝난 뒤 '패장 이재명'은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다. 짧은 기간에 경찰이 두 건(성남FC 후원금과 법인카드 유용)의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했다. 대장동 사업, 변호사비 대납 등 다른 의혹도 수두룩하다. 진실은 수사와 재판으로 밝혀지겠지만 당장 사법 칼날은 피해야 하기에 회기 중 불체포특권 등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분당은 대선 때 자신이 윤석열 후보에게 12.7%포인트나 질 정도로 보수세가 강한 곳이어서 위험하다. 반면, 계양은 8.8%나 이겼고 송영길이 5선을 한 만큼 안전지대다.
이재명의 선택을 계양구을 주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송영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서 인천시장, 집권당 대표까지 오를 수 있도록 발판이 돼줬는데 갑자기 개인의 더 큰 꿈을 위해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며 떠나버렸다.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이번엔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인물이 찾아와 송영길과 같은 편이니 대신 표를 달라고 한다. 참 난감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정치성향을 바꿔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준다. 그런 외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유권자의 처지를 정치인들이 악용해 출세의 도구로 삼는다. 이번에도 이재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운동 기간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진영논리에 읍소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사례만은 아니다. 유권자를 볼모로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정치적 성장을 하려는 시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구시장선거 국민의힘 후보 홍준표도 이재명과 결은 다르지만 5년 후 대권무대 재등장을 위해 대구로 '셀프 하방'한 측면이 있다. 홍준표도 보수성향 대구 유권자의 외길 선택으로 시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4년 후 대구시장 재선에 도전할 확률은 이재명이 계양구을에 뼈를 묻을 확률만큼이나 낮다. 유권자를 도구로 생각하는 정치인의 습성 때문이다. 한때 'TK의 차세대 리더'로 꼽혔던 유승민은 2차 대권 도전에 실패한 뒤 경기도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그곳 유권자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유승민에 앞서 지역 정치권의 리더였던 강재섭도 마지막 정치인생 연장을 위해 분당에 출마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과거 유시민은 진보의 씨앗을 뿌리겠다며 대구 선거에 출마할 때 "뼈를 묻겠다"고 했다가 떨어지자 미련 없이 짐을 쌌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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