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23] 中 푸젠성 우이산(武夷山), 바위 절벽과 어우러진 구곡계 협곡…조선 선비의 이상 '구곡문화' 탄생지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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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08:27  |  수정 2023-01-20 08:13  |  발행일 2022-05-13 제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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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산 천유봉. 바위 절벽이 신선의 손바닥 모양이라 하여 선장암으로도 부른다.

중국 푸젠(福建)성에 있는 우이산(武夷山)은 중국 동남지역 최고 산수경관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인 우이산은 다양하고 거대한 암봉(巖峰)과 맑고 많은 물이 흐르는 멋진 계곡, 푸른 차밭과 아열대림, 동천(洞天) 등이 어우러진 특별한 절경을 자랑한다.

우이산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다채로운 역사와 전설이 서려 있게 된 산이기도 하다. 한족(漢族)이 들어오기 전에는 남방의 이민족이 살았던 곳으로, 절벽에 매장하는 장례풍속(풍장)의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또한 불교와 도교의 자취가 우세했던 곳이었으나, 성리학을 완성한 주자가 머물면서 유학 강학과 풍류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성리학의 요람이기도 한 우이산은 1999년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 시대에 팽조(彭祖)가 이 산의 만정봉(慢亭峯)에 은거했다고 한다. 팽조의 큰아들 팽무(彭武)와 둘째 아들 팽이(彭夷)는 당시 홍수로 피해를 입는 백성들을 걱정하여 아홉 구비의 물길을 냈다. 이를 구곡계(九曲溪)라고 부른다. 우이산이란 명칭도 팽무와 팽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한다. 한나라 때의 신선인 무이군(武夷君)이 여기에 살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우이산의 절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봉우리인 천유봉(409m) 정상에는 천유각(天遊閣)이 있다. 이곳에 팽조와 팽무·팽이 상이 모셔져 있다.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천유봉은 하나의 엄청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840개 정도의 바위 절벽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천유봉에 오르지 않고는 우이산을 보았다고 하지 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이산의 최고 명소이다. 이곳을 오르면서 보게 되는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구곡계 협곡은 맑고 풍부한 물과 부드러운 바위 절벽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경을 선사한다.

우이산은 처음에는 도교의 중심지였지만, 불교 또한 함께 발전해 17세기에는 불교가 도교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자가 이곳에 정사를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성리학의 요람으로 변하였다. 우이산에는 북송 시대부터 청나라 사이(10세기~19세기)에 지은 35개의 서원(書院) 유적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우이산은 무이암차(武夷巖茶)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곳에는 황실의 차 농장이 있었다. 황실에 바칠 차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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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벌을 탄 관광객들이 가운데 우뚝 솟은 옥녀봉 주변 풍경을 즐기며 유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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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유봉에서 바라본 우이산 풍광.

◆주자와 무이구곡

우이산은 조선에서 더 발달한 구곡(九曲)문화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구곡은 말 그대로 산속 계곡의 아홉 구비를 뜻한다. 구곡은 선비(성리학자)들이 자신이 머물던 산수에 경영한 원림(園林)이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이상이 녹아있는 정원문화였다 할 수 있다.

이런 구곡문화는 주자가 우이산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면서 시작됐다. 주자는 이곳에 1183년부터 7년 동안 머물면서, 계곡의 아홉 구비에 이름을 붙이고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지었다. 주자는 계곡 9.5㎞ 구간에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설정하고, 구곡의 풍광과 감상을 담은 무이도가(무이구곡가)를 읊은 것이다.

무이구곡가는 이러 서시로 시작된다. '우이산 위에는 신선의 정령이 어려 있고(武夷山上有仙靈)/ 산 아래 찬 물결은 구비구비 맑도다(山下寒流曲曲淸)/ 그 가운데 기막힌 절경을 알고자 하는가(欲識個中奇絶處)/ 뱃노래 두세 가락 한가로이 들어보게(櫂歌閑聽兩三聲)'

1곡은 승진동(升眞洞), 2곡은 옥녀봉(玉女峯), 3곡은 선조대(仙釣臺), 4곡은 금계동(金鷄洞), 5곡은 무이정사(武夷精舍), 6곡은 선장봉(仙掌峯), 7곡은 석당사(石唐寺), 8곡은 고루암(鼓樓巖), 9곡은 신촌시(新村市)이다. 선조대는 선기암(仙機岩)으로 불리기도 한다.


절벽에 매장하는 장례풍속 곳곳 남아
성리학 요람…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
홍수 피해 막기 위해 아홉구비 물길
840개 절벽 계단 오르면 천유봉 절경
옥황상제 딸이 풍광에 취한 옥녀봉

높은 암벽·암봉 사이 흐르는 맑은 물
36봉 99암의 바위산마다 茶나무 서식
붉은 토양서 자란 '무이암차'로 유명



무이구곡 구간은 대부분 양쪽으로 펼쳐지는 높은 암벽과 멋진 암봉들 사이로 맑고 많은 물이 흘러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을 이룬다. 구비가 많으나 물결은 대부분 잔잔하게 흐른다. 옛날에는 1곡에서 뗏목을 타고 9곡까지 거슬러 올랐다고 하나, 지금은 9곡에서 대나무 뗏목인 죽벌(竹筏)을 타고 1곡까지 내려오면서 유람한다. 걸리는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관광객이 많아 하루 종일 뗏목이 이어지며 장관을 이룬다.

죽벌은 600~700여 명의 사공에 의해 600여 척이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죽벌은 2척을 묶어 6인승으로 운행되며, 죽벌 사공은 앞뒤로 1명씩 있다. 죽벌은 황금 시즌인 5월에는 1주일에 7천~8천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9곡을 향해 1곡인 승진동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멀리 대왕봉(大王峯·527m)이 솟아있고, 철판봉(鐵板峯·404m)도 눈에 들어온다. 계곡 위쪽으로는 멀리 2곡의 상징인 옥녀봉(313m)이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앞으로 펼쳐질 절경을 예고하기에 충분한 풍광이다. 옥녀봉은 우이산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옥녀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옥황상제의 딸 옥녀(옥녀봉)가 우이산에 내려왔다가, 그 풍광에 취한 데다 대왕(대왕봉)을 만나 천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옥황상제가 철판도인을 사자로 보내 불러오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사자는 술법을 써서 두 사람을 바위로 변하게 한 뒤, 계곡 양쪽에 떨어져 있게 했다. 그리고 서로 보지도 못하도록 그 사이에 병풍바위(철판봉)를 만들어놓았다.

2곡 옥녀봉을 돌아 올라가면, 3곡 선조대를 거쳐 점입가경의 절경들이 펼쳐진다. 감탄하다 8곡에 이르면 계곡 주변이 보다 평범해지며, 9곡을 지나면 좌우에 멀리 산이 보이는 평지가 펼쳐진다. 갈수록 골이 깊고 물길도 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곡을 지나면 오히려 평평하고 평범한 계곡이 펼쳐지는 특이한 지형이다.

9곡을 지나면 대나무 뗏목들이 늘어선 곳이 나온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뗏목을 타고 1곡으로 내려가면서 절경을 감상하게 된다. 수많은 뗏목이 계곡 사이로 흘러가는 모습도 색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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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 근처의 차밭 풍경. 우이산 곳곳에 차밭이 펼쳐져 있다.

◆무이암차

우이산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인 무이암차 또한 유명하다. 우이산의 특별한 풍광은 단하지형(丹霞地形)이라는 독특한 지형 덕분이다. 단하지형은 융기와 같은 내적 요인과 풍화 침식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붉은색 퇴적층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이러한 경관 속에 아열대 활엽상록수림이 발달하고 많은 종의 식물과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우이산의 지형은 구곡계를 중심으로 36봉(峰)에 99암(巖)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바위산을 토양으로 삼아 곳곳에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래서 우이산에 대해 '바위마다 차요 차가 없으면 바위도 없다(巖巖有茶 無巖不茶)'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런 우이산에서 나는 차를 무이암차라 한다.

우이산은 사시사철 따뜻한 기온과 높은 습도를 유지하여 차 재배에 적당하다.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높은 습도를 유지하고 일조량은 적은 덕분에 찻잎이 부드럽다. 또한 붉은색 사암의 토양은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땅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수한 품질의 차가 생산된다.

무이암차의 특징은 '암골화향(巖骨花香)' '암운(巖韻)'으로 표현된다. 은은하면서도 무게 있는 향기가 오랫동안 혀끝에서 지속되고, 마신 뒤에도 온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크다고 한다.

독특한 향기와 맛이 있는 무이암차로 육계, 수선, 철라한, 대홍포 등의 품종이 있다. 그 가운데서 대홍포를 최고로 친다. 대홍포(大紅袍)는 향이 특히 그윽하고 특별하며, 맛이 순수하고 맑아 '암차지왕(巖茶之王)'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현재 우이산 절벽에 남아있는 원래 대홍포 차나무는 6그루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홍포에 얽힌 흥미로운 전설이 전하고 있다.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우이산을 지나가다 병이 생겨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근처 사찰의 승려가 원숭이를 시켜 절벽에 있는 차를 따서 먹이자 병이 완치되어 무사히 과거를 보게 되었다. 이 선비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을 뿐 아니라 왕의 부마로 책봉되어 공주와 혼인하게 되었다. 부마가 된 그는 은혜를 갚고자 승려를 찾아가 절을 새롭게 단장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왕비에게 병이 생겨 천하의 명의를 불러 치료하였으나 완쾌되지 않았다. 이에 부마가 승려에게 차를 부탁하여 왕비에게 먹이자 질병이 완쾌 되었다. 왕은 너무 고마워 자신의 옷인 홍포를 벗어 나무 위에 덮어 주었다. 그러나 한 나라에 왕은 둘이 될 수 없다는 듯이 왕의 옷을 입은 차나무는 점점 말라 죽어 갔다. 이 사실을 안 부마가 왕이 내린 홍포를 걷어내자 차나무는 다시 살아났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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