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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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3 07:39  |  수정 2022-05-23 07:46  |  발행일 2022-05-23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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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대 명예교수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일까? 그 까닭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기 때문이라고 했다. 워즈워스는 어려서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시란 아! 하는 감탄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그 감탄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뛰어나다는 표현이다. 아이들에게는 감탄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들은 공을 바닥에 던지고 공이 굴러가는 모습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아이에게 굴러가는 공은 하나의 추상적인 공이 아니라 아이와 전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유일한 공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거치고 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감탄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교육과정을 거치고 난 아이들은 자신은 모르는 것이 없으며 감탄하는 능력은 오히려 배우지 못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의 유작을 모은 최근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프롬은 창의성의 첫 번째 전제조건으로 '감탄하는 능력'을 꼽았다. 프랑스의 수학자 레옹 푸앵카레(1860~1934) 역시 과학의 천재성이란 '놀라는 능력'이며, 학문의 발전은 감탄하는 능력으로 인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학사에서 놀라운 발견을 한 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쳐버린 현상을 보고 감탄하며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다.

노인이 되면 감탄하는 능력이 사라진다. 노인은 새롭게 보는 능력이 감퇴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거의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래서 노인의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감탄하는 능력을 되살리려면 무엇이든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매년 피어나는 쇠물푸레나무를 보고 그냥 '쇠물푸레나무가 꽃을 피웠구나' 하고 지나치지 말고 그 향기를 다시 맡아보고 손으로 부드러운 꽃잎을 새롭게 느껴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워즈워스와 같이 꽃을 보며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감탄하는 마음은 삶에 대한 지극한 긍정이다. 류시화는 '꽃샘바람에 흔들리면 너는 꽃'이라는 최근의 시집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매일 아침 나는/ 삶에 대해 '네'라고 말하며/ 절한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으로 웅크렸던 몸을 펴고/ 미지의 하루를 향해 두 팔을 내민다./…/ 매일 밤 나는 / 다시 삶에 대해 '네'라고 말하며/ 절한다./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계획에 없던 일들을 더 많이 준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리고 깊이 죽은 자세로 잠든다/ 내일 내가 살아난다면/ 완전히 새로운 몸과 정신으로 깨어나기 위해'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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