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아무튼, 지금의 마음

  •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 |
  • 입력 2022-05-23 07:39  |  수정 2022-05-23 07:46  |  발행일 2022-05-23 제12면

2022052101000645500026581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라는 엄마의 말에 크리스틴은 "지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나를 좋아할 수 있어?"라고 되묻습니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사는 평범한 17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크리스틴은 왜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에 좋아하냐고 물었을까요? 사랑이 혈연관계에 종속되는 감정이라면, 호감은 관계를 벗어나 개인의 취향에 의존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틴은 엄마 매리언이 자신을 딸이 아닌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좋아해 주길 바랍니다.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 대신 '레이디 버드'라 불리길 원하는 크리스틴의 꿈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사는 지금, 크리스틴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새크라멘토 저 너머에 있을 특별한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부정하는 것뿐입니다. 엄마가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르지 않고 무시하자, 항의의 제스처로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 소녀. 이토록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면서까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17살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조금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닮은 자신의 사춘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5월 한 달 동안 교육 실습이 진행되었습니다. 해마다 교생 선생님들의 풋풋함이 학교 공간을 채울 때면 교사로서 어떤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지, 학생들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교생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적절한 지도와 조언을 해야 하는 지도 교사의 위치를 조금만 비켜서 보면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마도 교생 실습의 처음은 당황스러움의 연속일 것입니다. 대학 교재나 수업을 다룬 전문 서적에 존재하는 이상화된 학생들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교실에, 운동장에, 복도에서 만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은 저마다의 생각과 욕망을 지닌 '레이디 버드와 같은' 존재이기에 하나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도하는 교생 선생님에게 학생들의 '다름'을 존중하고, 교사와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교과 지식을 적절히 재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생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도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예비 교사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흔히 '초심'의 중요성을 말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초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가다듬은 '초심'이 없다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멍하고 혼란스럽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것도 멋진 일입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연구실에서 오늘 수업을 돌아보고 내일 수업을 준비하는 교생 선생님들의 어깨가 축 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지금 내가 마음을 다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집 할머니는 '하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계속할 수는 없다'고 힘들어하는 찬실의 말에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라고 말합니다. 찬실은 '그럼 오늘 하고 싶었던 거는 콩나물 다듬는 거였겠네요'라고 말합니다. 주인집 할머니는 웃으면서 '알면 됐어'라고 하지요. 처음부터 잘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온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대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애써서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예비교사로서의 첫 발자국을 뗀, 교생 선생님 모두를 응원합니다.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기자 이미지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