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검사 출신 대통령의 놀라운 정치력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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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3   |  발행일 2022-05-23 제26면   |  수정 2022-05-23 07:09
도어스테핑, 야당과 소통
신선한 시도 선보이는 尹
꼬였던 총리 인준 정국도
원칙과 배짱으로 풀었다
초심 유지가 성패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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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윤석열 대통령은 '87헌법' 체제 이후 탄생한 8명의 대통령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 짧은 기간에 국민의힘 입당→대선후보 경선→대선 본선을 숨 가쁘게 치렀지만 정치경력 1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펼치며 보여주는 '정치력'은 역대 대통령들을 압도한다. 취임한 지 2주일이 채 안 됐지만 그런 평가를 내리는 건 거의 매일 새롭고 신선한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 시도들을 임기 도중에 포기하기 어렵도록 대못을 박고 관행화시키는 일도 윤 대통령 스스로 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도 반신반의했던 '탈(脫)청와대'를 진짜 밀어붙인 일이 시발점이었다. 만일 여론에 밀려 슬그머니 청와대에 들어갔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업무와 주거공간이 한 곳에 있는 청와대에서라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선 채로 문답을 주고받는 '도어스테핑'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주말에 전통시장 나가서 김밥·순대·떡볶이를 포장하고 백화점에서 신발 쇼핑을 하거나 반려견과 아파트단지를 산책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 시절 권력의 스피커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이를 두고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떠들지만 전임 대통령이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데 대한 시샘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 외에 대선 때 자신을 반대했던 세력에도 대화의 손길을 내민다. 그냥 정치적 제스처만 취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는다. 국회 시정연설 후 민주당 의석을 돌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나선 "다른 대통령들도 그렇게 한 줄 알았다"고 했다. 광주행 KTX 특별열차에 참모진, 국무위원, 여당 국회의원을 몽땅 태워 5·18 기념식에 가서는 보수정권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광주에서 발행하는 무등일보의 17일자 1면 톱기사 제목은 '세상에 이런 날이…보수정권이 5·18 기념식 총동원령 내렸다'였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도 못 했던 일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력은 '여의도 문법'과 완전 다르다. 여의도 식 정치는 편 가르기, 절충과 타협, 꼼수가 판을 친다. 만일 국회의원 경험이 있는 여의도 정치 출신 대통령이었다면 민주당이 은근히 요구한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안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맞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검사 출신 대통령은 "국무총리 없이 갈 수도 있다"며 배짱을 부렸다. 믿는 구석은 민심이었다. 민주당은 총리 인준안 투표가 있는 날 사상 최악의 정당지지율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뒤에 국민이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 '인준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윤석열 스타일' 정치력이 여의도의 정치문법을 넘어선 결과였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날 걸로 예상된다. 당장 26일 열리는 새 정부 첫 정례 국무회의를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이 아닌 정부세종청사에서 열기로 하면서 수도권 집중 해소 정책으로 이어지는 기대를 갖게 한다. 세종 국무회의도 도어스테핑처럼 관행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에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까지는 몰라도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볼 수 있게 됐다. 다만 초심이 유지된다는 전제가 따른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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