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말의 품격과 매너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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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30 07:45  |  수정 2022-05-30 07:48  |  발행일 2022-05-3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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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아이들 싸움 때문에 감정이 상한 양쪽 부모로부터 몇 차례 전화를 받았다. 사소한 오해로 한쪽 학생은 크게 마음이 상했다. 상호 간의 공방 과정에서 일이 예상 밖으로 커졌다. 대화 중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매너'와 '말의 품격'이었다. 상대가 예의도 없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다고 서로 비난했다. 피해를 본 쪽은 상대가 건성으로 사과했다며 화를 냈다. 다른 쪽은 어쨌든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상호 비방과 불평의 말속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어휘가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감정 악화의 원인과 해법은 결국 '말의 품격'과 '매너'였다.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앞은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토 달지 않고 사과하는 말이다.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런 사과를 받는다면 상대도 자신이 왜 기분 나빴는지를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말을 오해했거나 과민 반응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미안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뒤의 말은 들으면서도 찜찜하고 불쾌할 수 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넌 왜 기분이 나빴니? 난 네가 오해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기분 나쁘다니 사과는 하겠지만, 내 말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다시 생각해봐. 네 속이 좁아서 그럴 수 있어" 등의 뜻이 내포된 내키지 않는 사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원만하고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는 상호존중과 매너가 중요하다. 매너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태도에는 마음가짐, 몸가짐, 입장, 견해 등이 포함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유명 기업 CEO에게 "당신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응답자의 93%가 능력이나 기회, 운이 아닌 '매너(manner)'라고 답했다. 매너는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관계의 감수성'이라 할 수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매너의 기본인 셈이다. "좋은 매너는 공감과 신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삶 자체를 멋지게 만들어 준다." 정진홍의 '매너,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글에 나오는 말이다.

양쪽 부모와 학생에게 매너에 관한 글을 주며 꼭 읽게 했다. 일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를 간단하게 적어 보라고 했다. 얼마 후 한 자리에 앉았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예의를 갖추고 차분히 경청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바로 오해가 풀렸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이 평범한 경구들을 기억하고 실천하면 무수한 소모적 분쟁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품위 있는 말과 행동, 매너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젊은 시절에 체득해야 한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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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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