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선비, 자리를 짜다…"누군가 업신여기는 것도 내 분수에 맞는 즐거운 일이면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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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3   |  발행일 2022-06-03 제34면   |  수정 2022-06-0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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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처지에 있든 '주인'이 되면, 그곳은 모두 바로 참된 자리가 된다는 의미다. 당나라 임제(臨濟) 선사의 말이다. 많이 회자하는 구절이지만,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신분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명성이나 권력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부나 편리의 노예가 되어 참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수많은 '갑질'이 그런 것이고, 비굴과 아첨이 또한 그런 삶이다.

사장과 직원, 스승과 제자, 노인과 젊은이, 부모와 자식, 판검사와 피의자 등 여러 관계에서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 씌우는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수처작주'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위 말에서 임제 선사가 드러내고자 한 바는 이런 의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말하자면, 마음에 어떤 분별심도 없는 '주인'으로 살면 어떤 환경에 처하든, 무슨 일을 당하든 걸림이 없이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된다는 의미다. '무아(無我)'가 되고, 부처가 되어야 하니 아무나 이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닐 것이다.



관련한 옛글을 하나 소개한다.

시골 사람들의 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시골 선비가 젊어서 과거 문장을 익히다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풍월이나 읊고, 그러다 기운이 빠지면 자리 짜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

이 농담은 그런 처지의 선비를 천시하고 업신여겨서 하는 말일 것이다. 선비다운 풍모에서 멀리 벗어나고, 풍류와 아치를 손상하기로는 자리를 짜는 일이 가장 심하다. 그래서 자리 짜는 일을 특히 천하게 여겨서, 빈궁하고 늙은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일로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다가 일생을 마친다면 참으로 불쌍히 여길 일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주어진 분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느닷없이 비난하고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이제 나는 과거 문장도 풍월도 일삼지 않는다. 산속에 몸을 붙여 살아가므로 궁색하기가 한결 심하다. 따라서 농사짓고 나무하는 일이 내 분수에 맞는다. 더욱이 자리를 짜는 일이야 그다지 근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은가.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고 신경 쓸 일도 하나 없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 형제의 집에서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억지로 내게 자리라도 짜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웃 사는 노인을 불러서 자리 짜는 방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나는 속을 죽이고 그 일을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회적 신분 굴레서 자유롭지 못한 삶
씨줄 날줄 엇갈려 가며 자리 짜는 일
빈궁한 선비가 마지막에 하는것 여겨
괴로움은 모두 잊어버리고 일에 몰두
어떤 처지에 있던 그 자리가 참된 자리

처음에는 손은 서툴고 일에 마음이 집중되지 않아서 몹시 어렵고 더뎠다. 종일토록 해봐야 몇 치 길이밖에 짜지 못했다. 그러나 날이 지나고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손을 놀리는 것도 저절로 편해지고 빨라졌다. 짜는 기술이 머릿속에 완전히 익자, 자리를 짜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보고 말을 나누더라도 씨줄과 날줄이 번갈아 가며 엇갈리는 것이 모두 순조로워서 조금의 오차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괴로움은 다 잊어버리고 즐겨 자리를 짜게 되었다. 식사하고 소변을 보러 가거나 귀한 손님이 올 때가 아니면 쉬지를 않았다. 따져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 길이를 짰는데,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서는 여전히 서툴다고 하겠지만 내 처지에서는 크게 나아진 것이다.

천하에 나만큼 재주가 없고 꾀가 부족한 자가 없다. 한 달 배워서 이런 정도까지 이른 것을 보니, 이 기술이란 것이 천하의 보잘것없는 기술임을 얼추 알 만하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참으로 적합하다. 비록 이 일을 하다 내 일생을 마친다고 해도 사양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분수에 알맞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여 내게 보탬이 되는 것은 다섯 가지다. 일하지 않고 밥만 축내지 않는 것이 첫 번째이다. 일없이 하는 괜한 출입을 삼가는 것이 두 번째이다. 한여름에도 찌는 듯한 더위와 땀이 나는 것을 잊고, 대낮에도 곤한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세 번째이다. 시름과 걱정에 마음을 쏟지 않고, 긴요하지 않은 잡담을 나눌 겨를이 없는 것이 네 번째이다. 자리를 만들어 품질이 좋은 것으로는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고, 거친 것으로는 내 몸과 처자식이 깔 수 있다. 또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로는 나처럼 빈궁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다섯 번째이다. 정축년 여름 5월 아무 날에 쓴다.

구사당(九思堂) 김낙행(1708~1766)의 '직석설(織席說)'이다.

김낙행은 안동 출신으로, 밀암(密庵) 이재의 제자다.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 등에 조예가 깊었다. 강좌(江左) 권만, 대산(大山) 이상정 등과 교유하며 글을 쓰고 학문을 연마한 선비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고, 효행이 지극했다. 특히 제문(祭文)에 뛰어나서 '구제밀찰(九祭密札·구사당 김낙행의 제문과 밀암 이재의 편지)'로 불리기도 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선비가 부인의 성화에 떠밀려 자리 짜는 일을 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을 담고 있다. 가난한 선비의 처지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선비' '양반'이라는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인'으로 살지 못했다면, 훨씬 더 불행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리를 짜면서 재미와 보람도 느끼게 못 했을 것이다.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라는 구절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불법(佛法)은 애써 공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상시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다.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눕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을 것이지만, 지혜로운 이는 알 것이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자신 밖을 향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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