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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성골이 윤석열 정부에서 부활한 걸까. '성골 검사'란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윤 대통령과 연분이 있는 검사를 이르는 조어다. 윤 정부 출범 후 정부 요직에 기용된 검찰 출신은 하나같이 '검사 윤석열'과 연(緣)이 닿은 검사들이다. 같은 수사팀이나 같은 검찰청에서 일한 인연이 있는가 하면 카풀 멤버도 있다. 좌천된 임지(任地)에서의 '밥 총무' '술 동지'도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장모와 김건희 여사의 변호를 맡은 끈끈한 관계까지 사적 인연은 차고 넘친다. 언론은 기꺼이 이들에게 '윤석열 사단'이란 칭호를 헌사 했다. '윤핵관'에 빗대 '윤핵검(윤석열 핵심 검사)'으로 칭하기도 한다. 과거 군(軍)의 '하나회'를 연상케 하는 이너서클이자 검찰 카르텔 내의 홍심(紅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원석 대검차장, 이완규 법제처장, 주진우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아무래도 다 열거할 순 없을 것 같다. 가장 생뚱맞은 인사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검사 출신을 앉힌 거다. 이러고도 책임총리? 국무조정실장 비토에 이은 '총리 견제 2탄'이란 말이 나온다. 윤 정부의 검찰 편중 인사를 두고 야당은 '검찰 공화국'이라 공박한다. 검찰 공화국? 공화정에서 이렇게 검찰이 득세한 근대국가가 있었던가. '성골 검사 왕국'이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복현 전 부장검사를 금감원장에 발탁한 건 '성골 검사' 우대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군사정권에서도 금융 분야엔 군 출신이 진입하지 않았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금감원장은 금융 전문가로서 금융 관행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이 하는 게 맞다"(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 경제학을 전공한 공인회계사라지만 금융을 '범죄'란 프리즘으로 봤던 인물이다. 검사장도 차장검사도 아닌 부장검사를 바로 금감원장으로 끌어올린다? 파격적 품계 상향이다. '검수완박'법이 추진될 때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 운운하며 검찰 수뇌부를 직격했던 검사다. 그 호기를 높이 산 걸까.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 강령이다. '삼국지'에도 '유재시거(唯才是擧)'가 나온다. 오직 실력만 보고 인재를 뽑는다는 뜻이다. 위나라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한 후 '유재시거'를 인재 등용의 기제로 삼았다. 윤 대통령도 여러 차례 능력 있는 인물의 적재적소 배치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능력'의 잣대가 지나치게 자의적(恣意的)이라는 게 문제다. 윤 정부에서 능력은 '성골 검사' 1순위, 서울대 출신이 2순위쯤 된다. 윤 대통령의 측근 위주 인사가 만든 공식이다. 소셜 미디어엔 '아가패(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패밀리)' 인사란 신조어가 나돈다. 인재풀이 협소해지면 능력주의는 엘리트주의로 변질된다.
윤 대통령은 "과거엔 민변 출신이 도배하지 않았느냐"며 검사 중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팩트부터 틀렸다.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민변 출신이 윤 정부의 '성골 검사'처럼 정부 요직을 싹쓸이 한 적이 없다. "너희들이 그랬으니 우리도 그런다" 식의 오기 또한 적절치 않다. 민변을 국가기관 검찰과 등치시킨다? 무리한 재단(裁斷)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를 거론하며 "법률가들이 정관계에 많이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고도 했다. 한데 미국의 거버먼트 어토니는 한국의 검사와 직무·권한이 사뭇 다르다. 법률가들이 공직 맡아야 법치국가란 말은 궤변에 가깝다.
윤 정부의 잇단 검사 등용에 따라 수사와 정보기관, 공무원 인사 추천 및 검증 기능이 모두 검찰 라인에 복속된 형국이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이 작동될지 의문이다. 정부 인사는 국정의 풍향계다. '성골 검사' 득세는 사정 정국의 신호탄일지 모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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