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서로의 첫 문장이 되어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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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6   |  발행일 2022-08-16 제26면   |  수정 2022-08-1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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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청년여성 멘토링 프로젝트'는 대구시가 주최하고 대구여성가족재단이 주관하는 프로젝트로 2020년부터 3회째 이어져 오고 있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멘토와 청년 여성을 연결함으로써 세대를 뛰어넘는 지역 여성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다. 올해는 문화기획, 디자인, 출판, 경제, 목공 다섯 개의 분야에서 7명의 멘토와 41명의 멘티가 함께했으며 필자는 출판 분야의 멘토로 함께하고 있다. 출판 프로젝트는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이라는 주제로 각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독립출판물 기획과 편집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해 공동의 책 한 권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 대상은 2030 여성으로, 참여한 멘티는 대학생부터 휴학생, 직장인,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까지 다양했지만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책을 사랑하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었다. 평소 관심사를 나눌 사람을 쉽게 찾기 어려웠던 만큼 금세 분위기는 편안해졌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며 글로 마음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참여한 멘티 대부분은 대구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반색했다. 지역 내에서 필드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서울로 가야만 문화·예술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편견을 깨트릴 수 있었다고 참여 소회를 밝혔다.

'멘토'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면서 처음에는 고민과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멘토의 자질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분투해야 하는 개인일 뿐 특출한 성과나 업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들 앞에 설 수 있는 이유는 그들보다 앞서 경험했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 마음으로 함께했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너무 멀거나 높아 보여서 엄두도 못 내보는 어려움이 아닌 한 발짝만 떼면 나란히 설 수 있겠다고, 한 뼘만 더 뻗으면 닿을 수 있겠다고, 멘티들이 쉽게 마음먹고 쉽게 다짐해 보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제시된 여러 글쓰기 방법 중 10분 글쓰기가 있다. 필자는 멘티들과 이 10분 글쓰기를 종종 했다. 첫 문장만 제시해 준 뒤 쉬지 않고, 검열하지 않고, 썼다가 되돌아가지 않고 정해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는 것이다. 백지를 앞에 둔 막막함과 두려움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첫 문장을 제시해 주면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쭉쭉 써나간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각자 다른 갈래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 속에서 예기치 않은 좋은 문장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마음과 마주치기도 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걸 써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부담 없이 써 내려가는 것이 글쓰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멘토는 그 첫 문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려 할 때, 마치 백지를 마주한 것 같을 때, 여기 오면 된다고, 내 뒤에 서면 된다고 앞에 서 있어 주는 사람. 그렇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의 고유함이 담긴 글과 생각 뒤에 바짝 붙어선 적이 많다는 걸.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감각이 서로를 이끌고 지탱해 주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최종 결과공유회가 9월2일 여성업엑스포에서 열린다. 이와 같은 사업이 지속되어 더 많은 청년 여성들이 꿈을 품고 지역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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