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시민파워 높이는 스마트시티

  •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글로벌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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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0 08:51  |  수정 2023-12-12 10:34  |  발행일 2023-10-20 제25면
'기술'보다 '사람' 우선…시민 주도 스마트 시티 '시티랩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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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2020년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점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베를린) 이미지.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스마트시티 기술은 치명적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1982년 인터넷표준 프로토콜이 개발되고 1995년에 상업용 시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그 혁신성과 가능성에 환호했다. 전자메일과 화상통화로 멀리 떨어진 사람을 연결하고, 소셜 네트워크와 온라인쇼핑 사이트를 통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확대할 수 있으며, 여론수렴, 온라인 투표, 전자의회, 전자공청회와 같은 전자민주주의를 구현하여 시민파워(Civil Power)를 확대한다는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의회, 정부, 법원, 언론과 함께 제5부의 권력으로 불리는 시민파워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함께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시간적·공간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은 이러한 대의제를 벗어나 시민들의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통치권 행사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는 낙관론과 전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인터넷 공간은 포퓰리즘과 흥미 위주의 정보공유 장소로 변질되었다. 왜곡과 선동,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현실 민주주의 한계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獨 베를린 공간 설계 활성화
시민 아이디어 온라인 소통
가로수 관리·자전거 인프라
자율적 개입 하며 권력 행사

디지털 새 가치 확장 못하면
불평등 위계 강화 수단 전락



지금까지 스마트시티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희소한 도시 자원을 최적으로 관리한다는 기술의 효율성 가치에 집중하여 왔다. 즉, 스마트시티를 주도하는 정부나 거대 자본과 기술을 집약한 기업이 스마트시티 기술을 사용하여 '권력이동(Power Shift)' 같은 새로운 가치로 확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스마트시티는 시민에게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 기술과 데이터를 결합하여 도시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된 미래에 상응하는 통치규범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가 불법으로 수집한 5천만명의 개인 심리정보를 활용한 사례는 스마트시티 기술이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마트시티가 기술을 넘어 새로운 가치로 확장하지 못한다면 스마트시티 기술은 정부와 시민의 불평등한 위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도처에 있는 센서와 사물인터넷망, 생체인식기술 등을 결합하면 스마트시티는 시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얻는다. 시민은 다수 사람이 사용하는 스마트시티 서비스를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주체다. 스마트시티가 이렇게 통치 수단으로 전이되는 상황에 대하여 광운대 도승연 교수는 '감시와 처벌'을 쓴 미셸 푸코의 말을 빌려와 '스마트시티로 구현된 현대 도시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한 판옵티콘(Panopticon, 원형 감옥)'이라고 경고한다.

스마트시티가 시민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내재적 가능성에서 자유로우려면, 기술로 도시문제를 해결한다는 효용성 가치를 넘어 시민권력을 확장하고 인간과 기술이 공존한다는 새로운 가치체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도시의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행정체계를 지원하며, 도시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시민의 권리행사와 통치활동을 지원하는 스마트시티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스마트시티의 가치 확장은 도시경제에도 이득이다. 근대 도시국가는 산업혁명으로 증가한 생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균일한 품질로 생산하는 평균(mean)적인 인력 공급이 중요해졌다. 근대 공공교육의 투자목표는 산업에 필요한 평균인력 양성이다. 도시 행정의 대상 집단도 평균을 중심으로 일정 편차 범위에 있는 시민들이다. 행정권력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평균시민집단을 규정하고 측정하는 것이다.

이제 산업시대는 저물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평균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도시의 복잡성은 증가했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문제들이 증가하고 도시 관리비용도 대규모로 늘어났다. 사회경제학은 시민참여를 통해 도시를 공동 관리하고 공동책임성을 높임으로써 도시가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여러 도시에서 기술 낙관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스마트시티의 가치를 새롭게 확대하려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들은 도시를 '효율적인 도시 행정, 균형 잡힌 권력배분, 지속 가능한 공간, 창발적인 혁신환경'으로 규정하고 이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스마트시티의 확장된 쓰임새를 강조한다.

픽스마이베를린(FixMyBerlin)
베를린시 정부와 시민이 소통하며 자전거와 관련된 데이터와 인프라를 구축해 가는 '픽스마이베를린(FixMy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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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랩 베를린은 개방형 데이터를 활용해 베를린 거리의 가로수에 시민이 직접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기스 덴 키쯔(Gieß den Kiez)'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런 관점에서 스마트시티 베를린은 시사점이 크다. 2015년 스마트시티 전략(Smart City Strategie Berlin)을 공포할 때만 해도,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처럼 도시가 직면한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기술을 가진 기업과 개발 자금을 다루는 정부 사이에서 시민이 주도권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시민 행복을 위한 도시를 설계한다면서 정작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은 소외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2020년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점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새롭게 시작한 스마트시티는 도시 공간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모든 단계에 시민참여가 핵심이다. 베를린시는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종과 연령, 서로 다른 교육 수준, 이주 경험의 유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디지털 베를린 시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mein.berlin'을 구축하여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베를린시는 시민주도 스마트시티를 운영하기 위해 '시티랩 베를린'이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시티랩 베를린은 개방형 데이터를 활용해 베를린 거리의 가로수에 시민이 직접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기스 덴 키쯔(Gieß den Kiez)' 플랫폼을 개발하고, 베를린시 정부와 시민이 소통하며 자전거와 관련된 데이터와 인프라를 구축해 가는 '픽스마이베를린(FixMyBerlin)'을 추진하는 등 시민이 자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다양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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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글로벌협력센터장)

이제 스마트시티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스마트시티를 구현함에 있어 시민이 개입하고 주도하도록 권력을 이양하고 이에 필요한 시민훈련에 투자해야 한다. 시민의 디지털 마인드를 높이고, 인간과 기술의 공존하는 '인간을 닮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시민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가장 투자회수율이 높은 선택이다. 행정 권력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적 관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스마트시티 기술로 완전하고 대등한 시민 권력을 확보하거나 이상적인 도시공동체를 구현한다는 것은 끝끝내 도달할 수 없는 미완의 꿈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의 민주적 쓰임새와 인간과 기술이 함께 진화하며 도시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수고가 없다면 스마트시티는 그저 '텅 빈 목적지'를 향해 갈 공산이 크다. 파우스트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다.

<대구테크노파크 글로벌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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