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탑도그와 언더도그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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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4 06:59  |  수정 2024-01-24 06:59  |  발행일 2024-01-24 제26면
'강자=승리' 스포츠 공식에
약자의 예상밖 선전은 감동
세계 축구계 언더도그 한국
2002년 4강 통해 강팀 성장
실력으로 탑도그 증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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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언더도그'의 사전적 의미는 패배자나 낙오자, 또는 희생자, 약자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른바 '개싸움'에서 위에 있는 개(Top dog)가 우위를 점하고, 아래에 있는 개(Under dog)는 열세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미국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가 토머스 듀이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면서부터 널리 사용됐다.

사람들은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릴 때 환호한다. 여기에 '언더도그'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런 결과를 이뤄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감동은 배가 된다.

스포츠에서 언더도그의 의외성이 가장 빈번한 종목을 꼽으라면 축구를 들 수 있다. 월드컵에서는 예상 밖 선전으로 축구팬을 열광시킨 언더도그 팀이 드물지 않게 배출됐다.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북한이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8강까지 올라 '아프리카 돌풍'을 일으킨 카메룬이 대표적이다.

미국월드컵에서 이전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던 불가리아가 4강에 오른 것, 그리고 다음 대회인 프랑스월드컵에서 첫 출전한 크로아티아가 루마니아·독일을 차례로 이기고 4강에 오른 것도 언더도그 사례로 꼽힌다.

특히 언더도그의 반란을 제대로 일으킨 경우가 2002년 한국이었다. 당시 공동 개최국이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만만찮은 전력의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이기며 16강에 오른 데 이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라는 우승 후보를 제물로 4강에 오르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후 한국은 월드컵 원정 승리와 2010·2022 월드컵 16강 진출, 아시안게임 연속 우승 등을 이루고 세계 축구계의 무시 못할 강자로 올라섰다. 이른바 언더도그에서 탑도그가 된 것이다.

이런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번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황희찬 등 빅리그에서 뛰는 해외파 선수들을 중심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호주·이란 등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요르단에 끌려 다니다 겨우 무승부에 그치면서 조1위 확보에 실패했다. 일본도 이라크에 패하면서 결승전에서나 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한일전이 16강전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

언더도그 신세에서 벗어났지만 언더도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잉글랜드의 축구 전설 게리 리네커는 1990년 "축구는 단순한 경기이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닌 후 결국 독일이 이긴다"고 말했었다. 탑도그 독일 축구에 대한 감탄의 말이다.

하지만 28년 후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보고 난 후에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90분간 22명이 공을 쫓는데, 독일이 더 이상 항상 이기지 않는다"라고 패러디했다. 축구의 의외성을 되새긴 말이다.

탑도그로 성장해 언더도그 출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한국 축구의 성장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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