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세계식문화산책] 푸미폰 국왕과 태국 요리의 성공

  • 이연실(체리)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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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2 08:04  |  수정 2024-02-02 08:05  |  발행일 2024-02-02 제13면
한류 열풍 뜨거울 때 한식 세계화 '불' 지펴라

태국 요리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이다. 물론 나도 즐겨서 자주 싱가포르의 홀랜드로드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 갔었다. 내 태국 친구는 외교관의 아내였다. 태국은 놀랄 만한 진기록이 여러 개 있는 국가이다. 태국은 제국주의 시절에도 식민지배를 받아본 적 없다. 푸미폰 전 태국 국왕이 국민의 아버지로 칭송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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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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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4모작도 가능한 태국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먹거리가 풍성하다. 과거에 수시로 얼어 죽고 굶어 죽은 한반도 사람들이 그들의 눈에는 딱하고 가엾은 대상이었으리라. 푸미폰 국왕은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태국 국민이 살길과 국가의 미래를 고심했다.

그의 결론은 바로 관광과 음식이었다. 그래서 7천 개 마을을 골라 특별히 음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했다. 누구나 지구촌의 의식주에 관심이 많다. 80억명 넘는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먹으며 어디에 사는가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매일 세 번씩 먹는 음식의 경우, 그 종류나 가짓수가 다양하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그 나라의 음식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오래전 어느 한국인이 김치의 종류를 자랑하자 일본인이 회 종류를 자랑했단다. 그러자 중국인이 웃으며 "우리는 만두 한 종류만 해도 한국과 일본 음식 숫자보다 더 종류가 많다"며 으쓱댔다. 중국인이 국토 면적과 인구 숫자 그리고 전 세계 시골 마을에도 들어가 있는 자국의 음식 문화를 자랑삼아 얘기하며 든 비유였다.

한식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낀 게 영국인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한 영국인이 퇴근하고 나서 김치를 한 통씩 배달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유럽 남자였다. 낮에 그의 아내가 김치를 담그고 저녁이면 영국인 남편이 김치를 주문한 고객의 집에 배달하는 거였다. 그 영국인은 회사에서 버는 급여보다 김치를 팔아 더 수익을 내고 있었다.

20여 년 전 한국 사람인 나를 보고 싱가포르 사람들뿐 아니라 다국적 외국인들이 신기해했다. 자기들이 살아오며 처음 만나본 한국 사람, 게다가 매일 드라마나 사극에서 보던 한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 한류 열풍을 잘 활용해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식을 대접하며 자주 초대했다.


태국 국민 살길과 국가 미래 고심한 푸미폰 국왕
7천 개 마을 골라 '음식 세계화 프로젝트' 진행
지금은 세계인 누구나 좋아하는 요리로 알려져
한류 열풍으로 한식 알릴 기회 활짝 열린 지금
일회성 행사 아닌 전문적·적극적 투자 필요해



무슨 열정으로 그리했는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기도 했다. 열대지방의 특징인 모닝마켓에도 다녀왔다. 대형마트에 해당하는 싱가포르의 '콜드 스토리지'나 '페어프라이스' 또는 '카르프'에서 장을 봐 놓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와 한국 마트에서도 재료를 구하곤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해 냉장고 3대를 가동시켰다.

한식을 만들어 뷔페식으로 차리고 다국적 손님들을 초대했었다. 수영장 주변에 초대해서 파티도 열었다. 국적 불문, 인종 불문 모두 한식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모든 접시가 다 동이 나곤 했다. 한식과 김치가 일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알고 나서 놀랐다.

김치를 보고 배추를 썩혀서 먹는 줄 알거나 김을 태운 종이로 아는 이들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카사노바가 즐기고 값도 비싸서 일반인들은 그림의 떡인 굴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반응했다. 생굴을 보고 나서 어떤 동남아 사람들은 "마치 가래침 같이 보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식혜를 보면 "누가 밥을 먹고서 토해놓은 것 같다"며 못 먹는 이들도 봤다. "한국식 찰떡은 이가 달라붙는 본드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른 오징어는 시체 썩는 냄새"라며 거의 졸도한다. 그리고 "가죽 구두를 씹는 느낌"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미역국을 보고는 바다 이끼를 먹는 줄 알고 기겁하는 이가 있기도 하다.

외국 사람들이 대체로 가장 졸도하는 건 산낙지와 번데기다. 언젠가 외국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화가 난 적 있다. 한 외국 사람이 한국에 두루 여행을 다니며 문화와 음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시청률을 높이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DMZ 근처에서 "한반도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고 대치 상태"라며 "얼마나 위험한 나라인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 장면이 지나가고 나자 부산의 자갈치 시장도 보여줬다. 어느 상인이 산낙지를 썰어 참기름장에 찍어서 건네자 "토할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무례했다. 자기 문화 기준으로 토할 것 같이 보이더라도 전 세계에 나갈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그런 표현을 한 건 상식 밖이다. 정 못 먹겠으면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낯선 음식이다" 정도로 말했어야 예의가 아닐까?

그 다큐를 본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실제로 와본 적도 없는 이들이다. 한국이 너무 위험하고 한국인이 혐오 식품, 괴기스러운 걸 먹는 줄 안다. 심지어 어느 외국인은 한국 사람들이 삼시 세끼 개고기만 먹는 줄 오해를 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본 거나 경험한 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하며 살아간다.

의외로 외국인들은 홍어를 좋아한다. 자꾸 먹어보고 싶어 한다. 간장게장도 회도, 파전도 즐긴다. 막걸리도 엄청 좋아한다. 한국이 불과 30년 만에 지구촌에 두루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니까 한식도 더 흥미를 끈다. 우리가 1960년대처럼 살고 있다면 외국인들은 한식을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가난할 때는 외국에서 "김치 냄새가 난다"거나 청국장 냄새를 맡고 "시체 썩는 듯한 악취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마른 오징어 냄새에 외국 공항에 탐지견과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김치를 알고 싶다"느니 "배우고 싶다"고 하거나 "먹고 싶다"고 줄을 선다. 예전에도 지금도 김치는 김치이다. 김치 냄새가 향기로 바뀐 건 국가의 위상 덕분이다.

한국 음식은 지역별로 특색이 있다. 호남 음식은 예술의 경지이다. 어느 외국 친구는 영국 런던에 7억5천만원쯤 투자해 한식당을 열기로 했다. 내가 아이디어도 줬다. 파리의 경우 현재 300군데쯤 외국인이 운영하던 음식점들이 한식집으로 변신했다. 이를테면 중식당, 일식당 등도 간판을 한식당으로 내걸고 짝퉁 한식을 판다. 제대로 한국인이 한식을 파는 곳은 몇 군데 안 된다.

우리가 한식당을 제대로 운영하면 인기도 얻고 성공도 할 수 있다. 현지에 한국 요리사를 보내 달라고 하거나 한식당을 운영하라고 권유하는 나라가 줄을 잇는다. 한식 프로젝트에 고문으로 모시고 싶은 전문가도 있다.

정부나 지자체 조직들이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보이는 게 있고 세상이 열광하는 데도 대체로 대응을 못 한다는 느낌도 있다. 관계자들이 일회성 행사에만 치중한다는 생각이다. 지구촌에 널리 퍼질 한식 아이템이 무궁무진하다. 세 분야의 카테고리로 나눠야 된다.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한식으로 많은 매출도 올리고 인생 역전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불가능했던 기적이 일어난다. 돈을 추구만 하기보다 한식 문화 전도사가 돼야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푸미폰 전 국왕이 노력하자 태국 요리가 오늘날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미얀마 출신 귀부인도 태국 요리에 열광했다. 만약 우리나라도 의지를 가지고 한식에 마음을 연다면 한식 세계 진출은 쉽게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한식당, 한식 푸드 트럭이 대박 행진 중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지구촌에 1천 개 도시도 안 된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고 이제 시작이다.

로컬 AI블루테크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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