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갓생'의 역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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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9  |  수정 2024-09-13 09:01  |  발행일 2024-02-09 제26면

"내일은 '갓생' 살아야지."

하루를 비생산적으로 보냈을 때, 계획한 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요즘 세대가 하는 말이다. '갓생'이란 'God'(신)과 인생을 뜻하는 '생'(生)이 합쳐진 신조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인생, 남들에게 모범이 되고 부지런한 삶을 의미한다. 이보다 생산적인 삶이 어디 있을까.

특히 자기계발을 중요시하는 MZ세대에게 갓생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월 알바천국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7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4%가 갓생을 추구한다고 응답했다. 4명 중 3명은 갓생을 지향하는 것. 너도나도 열심히 사는 것을 동경하면서 이들 사이에선 '갓생 열풍'이 부는 셈이다. 유튜브 등 SNS에서도 '갓생 일상' 등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심심찮게 보인다. 기자도 이런 콘텐츠를 보며 나를 발전시킬 자극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갓생 열풍엔 함정이 있다. 모든 유행의 이면엔 그늘이 존재하는 역설.

'출근 전엔 운동, 퇴근 후엔 영어 공부, 주말엔 독서. 목표는 주 1권 이상 읽기'. 당신은 이 일상을 어떻게 보는가. 갓생으로 보는가. '그렇다'고 생각한 사람도, '그렇지 않다'고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갓생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어떤 이에겐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삶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겐 어떤 일을 수치적으로 증명하는, 성취해 내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보이는 갓생은 휴식도 없이 치열하게 사는 삶인 듯하다. 가끔 보면 기자의 기준에서 과로 수준이라 생각되는 것도 있다. 하루에 3~4시간을 자면서, 끊임없이 일에 몰두하는 일상. 문제는 이런 외부의 기준에 따라 맹목적으로 갓생을 실천하는 이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갓생으로 여겨지는 삶을 보면서 내 삶은 갓생이 아니라 느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다 되레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어쩌다 이들은 갓생 열풍의 함정에 빠졌을까. 김성수 평론가는 말한다.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는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으며, 갓생은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그러면서 사람다운 삶만 살아도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망이 필요하다고 한다. 태어날 적부터 이미 경쟁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세상은 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게으르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자신이 정말 게으른 삶을 살고 있는지, 사회에서 정한 기준에 내 삶을 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삶이 누군가에겐 나태로 점철된 삶이라 할지라도.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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