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일등보다는 일류가 되자

  •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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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5 07:10  |  수정 2024-03-25 07:10  |  발행일 2024-03-25 제22면
입시학원에서 오징어게임
시키는 나라는 미래가 없어
오징어게임 일등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속 친구와 소통
생각·신체 일류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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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학교 다닐 때 시험이 정말 싫었다. 그래도 항상 1등을 하려고 노력했다. 평범한 집안 자식이 대접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접 후보자가 되어 두 번의 큰 선거를 경험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였다. 모두 압승을 하였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선거와 시험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게 서열을 정해주는 방법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최근 근무하는 로펌의 대표변호사님으로부터 '가치성장위원회'를 만드는 데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변호사는 업무의 특성상 공공성이 강조되지만, 생계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영리추구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기업과 같은 로펌의 경우 변호사 숫자나 매출액 같은 외형으로 순위를 매긴다. 이런 현실에서 뜻밖에 무형의 가치를 성장시키는 걸 목표로 하는 위원회를 만드는데, 그 이유가 "일등 로펌보다 일류 로펌"이 되기 위해서란다. 일등은 모든 경쟁자들을 밟고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아 적들을 양산하지만, 일류는 주변과 상생발전하면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총선의 열기가 뜨겁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하에서의 총선은 오징어게임 같다. 최후의 승자는 엄청난 권력과 명예를 얻지만, 떨어지면 목숨을 잃는 것만큼 참혹하다. 그러다 보니 온갖 비난과 모략이 난무한다.

우리 선거의 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선거이다. 만 19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연령, 성별, 종교, 학력 등 어떠한 차별 없이 1인당 한 표씩 공정하게 선거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어떠한 주관적인 고려도 없이 한 표라도 더 얻어 승자가 되면 모든 것을 독식한다. 전체 선거권자의 몇 %의 지지를 받았는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의 시험 역시 거의 대부분 정해진 정답을 맞추는 방식이다. 세상일 모두 유일한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란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응시자의 다양한 생각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공정성 시비 때문에 채점자의 재량을 최대한 배제하는 정량평가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암기 위주의 정답찾기 시험에 익숙하다 보니 다양한 사고를 펼치는 연습이 부족하다. 과거의 지식을 기억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떨어진다. 편하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편이다. 또한 초중등학교 의무교육 실시와 높은 교육열 덕분에 전 세계적인 고학력 사회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국민들로 구성된 나라에서 문학과 과학 분야에서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콘크리트로 된 입시학원을 전전하며 얼마나 많이 외우고, 어떻게 해야 한 문제라도 더 맞출 수 있는지만 배운 결과이다.

청소년을 콘크리트 입시 학원에서 오징어게임을 시키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질문 하나를 던지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이들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오징어게임에서 일등이 되기를 기대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며 생각과 신체가 모두 일류가 되도록 자라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모두가 살아서 통과할 것 같다.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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