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오타니의 슬럼프

  •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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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6 06:52  |  수정 2024-03-26 06:53  |  발행일 2024-03-26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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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9천억 사나이'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15일 한국을 방문했다. 메이저리그 최초 한 시즌 10승 40홈런 기록, 만장일치 MVP, 일본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우승, 세계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계약까지. 강속구 투수이면서 동시에 홈런 타자인 오타니는 잘생긴 외모와 성실한 인성까지 갖추고 있어 유니콘, 만찢남 등 별명을 갖고 있다. MLB 서울 시리즈로 오타니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런 오타니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고 깊은 바닥을 헤맨 적이 있다고 한다. 오타니는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는데 팔꿈치와 무릎 수술로 2년 넘게 침체기를 보냈다. 2018년 빅리그 데뷔 후 첫 시즌 10경기에 등판한 뒤 팔꿈치에 이상을 느꼈고 결국 수술대에 오르며 2019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020년 마운드에 복귀했지만 일본 프로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슈퍼스타로서의 기량은 볼 수 없었다.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 등판을 포기한 데 이어 옆구리 부상까지 입어 2021년 완전히 시즌 아웃 했다. 오타니의 로커룸이 깨끗이 비워져 있어 그가 시즌 아웃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난 후였다.

오타니는 "나는 의구심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을 늘 상대해 왔다. 그 압박감이 나를 삼키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투수와 타자 겸업에 대해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고 일본에서 프로 데뷔 당시 조금만 삐끗하면 "역시 무리"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는 침체기 동안 휴식, 운동, 수면 관리, 식습관 관리, 데이터를 통한 피로도 측정, 과학적 분석을 통한 동작 교정 등 조용하지만 단단한 시간을 보냈다. 재활에 성공하고 선수 생활을 재기할 수 있을까 어제는 용기가 났는데 오늘은 불안한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오타니 옆에 그를 믿고 격려해 주는 감독과 가족, 친구들이 있었다.

운동선수의 부상처럼 우리 인생의 위기나 어려움은 다양한 모양으로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가족과의 이별, 사업 위기, 취업 시험 낙방, 예상치 못했던 퇴직, 갑작스러운 질병 등. 그러한 때에는 그 시기에 맞는 새로운 루틴과 훈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느껴질 때,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극복의 첫 출발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인데' '나는 큰딸인데' '남들은 이보다 더한 일도 이겨내는데' '빨리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깊은 생채기를 내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껏 주저앉아 있기를,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기를, 지금의 상황을 정면으로 직시하여 받아들이고 또 소화하기를. 그러고 나면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통째로 잘라내고 새로운 실을 뽑아야 할지 자연스럽게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술받은 환자가 처음에는 수액으로 영양 공급을 받다가 어느새 죽 먹고 밥 먹고 일어나 회복하듯, 때가 되면 새롭게 다져진 단단한 길을 걷고 있을 자신을 믿어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그 상황을 당장 벗어나려고 허둥지둥 발버둥치다 탈진하게 되면 회복은 더뎌진다.

어제는 용기가 났는데 오늘은 불안한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본다. 세상 풍파와 인생의 위기, 슬럼프를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발자국을 내가 총총 뒤따라가고 있는 중인 것도 같다. 부상과 슬럼프를 극복하고 세계 최정상의 야구 스타가 된 오타니 쇼헤이처럼 우리 또한 각자 인생의 MVP가 되기를 염원한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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