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양치기 소년이 된 주민대피령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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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22  |  수정 2024-07-22 07:00  |  발행일 2024-07-22 제23면

예측이 어려운 게릴라성 폭우가 이어지며 전국 곳곳에서 비 피해가 속출한다. 정부는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집중호우가 예상될 때마다 산사태 취약지역에 주민 대피령을 내리고 있다. 중앙 정부의 지시는 말단 면사무소까지 전달되고 공무원들이 담당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주민들은 산사태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마을회관 등으로 몸을 피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뿐. 걸핏하면 내려오는 대피령에 주민들의 불만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기껏 마을회관에서 불편을 참고 견뎠는데, 산사태는커녕 비도 얼마 내리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 여럿이 지내는 불편은 너무 크다. 주민들은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살았지만 비가 이보다 더 내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왜 요즘 들어 호들갑이냐"는 반응이다. 대피지시에 응하지 않거나 응했다가 임의로 귀가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2011년 16명이 사망한 우면산 산사태에서 보듯 산사태는 지방의 산골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골짜기 보다 택지개발·태양광 설치 등이 이뤄진 개발지역에서 산사태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대피는 시골에서만 이뤄진다. 정부가 도시지역 주민들보다 촌로들의 생명과 안전을 더 중시하기 때문인지, 일상을 포기하고 좁은 마을회관에서 여럿이 지내는 불편을 도시민들은 못 견뎌도 촌사람들은 감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인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후진국적인 주민대피령을 언제까지 남발할 것인지 정부는 밝혀야 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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