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인류 역사를 바꾼 그 중심엔 '미생물'이 있었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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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9-20  |  수정 2024-09-20 07:51  |  발행일 2024-09-20 제16면
연대순 엮은 공생·공격·공진화
생명 위협한 역병과 항생제 발명
세균을 역설적 이용한 질병 치료
미생물 본연의 파괴자는 '인간'

[신간]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인류 역사를 바꾼 그 중심엔 미생물이 있었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역사 속 미생물과 미생물 연구의 현 주소를 살펴본다. 미첼 스위츠가 그린 '아테네 역병(왼쪽)'과 전자현미경으로 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미생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다. 하지만 이 작은 존재는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미생물은 인류 등장 이전부터 수십억 년 동안 지구를 뒤덮으며 수많은 생물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인류 역사 속 격변의 순간에 미생물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존재를 알아차린 역사는 길지 않다.

성균관대 의과대학(미생물학교실) 교수인 저자는 평소 과학과 역사·인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그는 평소 중립적인 미생물이 특정 상황이나 역사적 맥락과 만났을 때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는 상황을 수없이 마주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21세기 첫 팬데믹으로 남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미생물은 반짝했다가 사라지고, 어떨 때는 세상을 뒤흔들기도 했다.

[신간]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인류 역사를 바꾼 그 중심엔 미생물이 있었다
고관수 지음/지상의책/264쪽/1만8천500원

책에선 인류와 미생물이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온 과정을 연대순으로 엮었다. 이 이야기는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이바지한 '효모'로 시작한다. 술이 효모의 발효로 만들어진다는 건 지금은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지만, 인류 진화에 관여했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로 인간이 왜 술에 탐닉하는지를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는 자연 알코올 발효 음식에 잘 적응하면 과일 확보에 유리하고, 적당히 취해 기분이 좋아지면 열심히 먹이도 수집해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유리했으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 역사의 향방을 바꾼 수많은 사건의 중심에 미생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투키디데스가 치밀하고도 생생하게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사실 '아테네 역병'의 기록이었다. 일명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둘러싼 일들은 사실 '면역 전쟁'이라 할 정도로 불균등 미생물 교환이었다. 산업혁명 시기 대규모로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한 결핵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했다.

책 후반부에는 세균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질병 치료를 위한 노력 등 미생물 연구의 현주소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생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류는 항생제를 발명해내고,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을 막고, 궁극적으로 질병을 정복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미생물학의 발전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관점으로 연구도 펼쳐지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특정 환경, 특히 인체에 존재하는 미생물이나 그 미생물들의 전체 유전체를 말한다. 저자는 역사에 기록된 미생물은 대체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람에게 반드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책에선 이를 통해 감염성 질환이 단일 미생물의 활동 결과가 아니라 여러 미생물이 한꺼번에 상호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짚는다.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 무균쥐에 세균대사산물인 5-아미노발레르산과 타우린을 주입하자 이들의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확인한 연구 결과도 있고, 과도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파괴된 사람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분변 미생물 이식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저자는 인류 역사 속 미생물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증식이라는 미생물 본연의 목적을 파괴적으로 만든 건 인간이라는 데 특히 주목한다. 이를 통해 미생물이 단순히 생물학적 병리 현상인 것을 넘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확장되는 이면을 짚고자 했다.

저자는 "여기서 다룬 대부분의 미생물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면서 "우리는 이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더 많이 알아내야 하고, 또 그것을 현명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그에 따라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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