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결과의 함정 “KS 결과만 놓고 박진만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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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5 09:56  |  발행일 2024-11-15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결과의 함정 “KS 결과만 놓고 박진만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

삼성 라이온즈의 박진만 감독. <영남일보 DB>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결과의 함정 “KS 결과만 놓고 박진만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

지난달 13일 오후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대결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결과의 함정

심리학 박사가 포커 대회에 나가면 어느 정도 성적을 기록하게 될까?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또한 대학에서 논문이나 쓰던 샌님이 프로 갬블러들 사이에서 활약한다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변변치 않은 성적에 그치지 않을까 어림하는 분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심리학 박사 애니 듀크는 여성 최초로 포커 월드시리즈 챔피언십과 NBC 내셔널 포커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그간 따낸 상금만 400만달러, 우리 돈으로 50억이 넘는다. 이쯤 되면 심리학 박사가 포커를 쳐서 돈을 땄다고 해야 할지, 타짜가 대학에 가서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나는 과거 그가 쓴 책을 읽고 꽤 쏠쏠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삼성의 한국시리즈 패배를 보며 다시 한번 그것들을 떠올리게 됐다.

이번 삼성 라이온즈 패배의 원흉을 꼽아 본다면 누구일까? 주요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인해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져버린 탓에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낸 역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넷 여론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고 있는 사람을 꼽아 보자면 박진만 감독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라이온즈를 무려 2위까지 끌어올린 공은 분명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린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바로 듀크의 통찰을 떠올렸다. 그는 말한다. “야구 감독들이 큰 경기에서 패배한 후 욕을 먹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들이 나쁜 작전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작전 이후의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만약 결과가 좋았다면 비난을 받았던 바로 그 작전 지시가 오히려 신의 한 수라며 칭송을 받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야구는 체스와 다르다. 체스는 모든 국면에서 이론적으로는 가장 승리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단 한 수'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정답'이 있는 것이다. 곧 체스에서의 실착은 그 자체로 오답이다. 그렇기에 게임이 끝난 뒤 시간을 들여 복기를 하다보면 내가 어디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야구는 그렇지 않다. 야구는 듀크의 전공인 포커와 비슷한 게임의 룰을 가지고 있다. 선택을 했을 시점에서 그 선택이 아무리 최선이었다 할지라도 결과는 좋지 않을 수 있으며, 반대로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그것의 결과가 오히려 대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야구나 포커는 자세한 복기가 불가능하다. 한번 경기가 끝나버리고 나면 실제 행해진 결정의 반대 결과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듀크는 잇는다. “포커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이 뭔 줄 아세요? 결과만 놓고 자신의 선택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에 의하면 포커나 야구에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격려해야 할 순간이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결과가 좋았더라도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순간도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번 시리즈에서 나왔던 박진만 감독의 모든 결정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특정 상황에서 너무 기계적으로 번트를 대는 것 같은 성향에 대해서는 반성해보아야 할 지점도 분명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패배라는 결과만 놓고 박 감독의 모든 판단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점일 테다. 야구를 떠나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결정은 드러난 결과와는 별도로 판단되고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 인생은, 모든 것을 계량할 수 있는 체스보다는 바로 눈앞의 일조차 예측이 불가능한 포커나 야구와 훨씬 더 닮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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