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珍의 미니 에세이] 콜럼버스의 달걀

  •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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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22  |  수정 2024-11-22 08:06  |  발행일 2024-11-22 제14면
콜럼버스가 세운 그 달걀처럼

미국에서의 국회 입성 도전도

고비 넘기고 부지런히 해내길
[少珍의 미니 에세이] 콜럼버스의 달걀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오래 전 미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저녁식사 때 맥주를 한 잔 하는 자리에서 현지 가이드가 자기의 가정사를 화제에 올렸다. 초등학생부터 밑으로 아들만 넷이라 했다.

그는 20대에 집안이 쫄딱 망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고 하면서 작은 나라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아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에 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놈을 반드시 미국 국회에 입성시키겠노라고 큰소리쳤다. 우리는 모두 장하다고 박수를 쳤는데 오늘 그의 말이 문득 떠오른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본 콜럼버스의 동상 때문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게 높이가 무려 60m나 되는 기념 탑을 세워 꼭대기에 동상을 만들어 올려놓을 뿐 아니라 유해가 담긴 관까지도 세비아 성당에 모셔두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에서 성당에 관을 모시는 것은 성인이나 왕이 아니면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세비아 성당은 전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콜럼버스의 방대한 계획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었다. 여왕은 자기 나이 또래의 이 거칠고 무모해 보이는 남자에게 새로이 발견된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이익의 10%를 약속하며 탐험 선단을 출범시켜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일화를 만난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한 시민이 콜럼버스에게 말했다. "자네 아니면 신대륙을 탐험할 사람이 없겠는가? 누구라도 배를 몰고 대서양 서쪽으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이 말에 콜럼버스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달걀을 탁자 위에다 세울 수 있겠소?"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해 보리다." 콜럼버스가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탁자 위에 가볍게 툭툭 쳐서 똑바로 세워 놓았다. "그렇게 세우는 거야 누가 못할까!" 사람들의 항의에, "바로 그것이오. 무슨 일이든 맨 처음 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오. 탐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자신의 아들을 반드시 미국 국회에 입성시키겠노라고 큰소리 친 현지 가이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비자 발급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 부친께서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너 자갈밭에 민들레 홀씨를 뿌렸으니 그 뿌리가 오죽 실하고 질기겠는가.

지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신대륙의 달걀을 부지런히 세우고 있기를 바라며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지중해를 가리키고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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