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그는 20대에 집안이 쫄딱 망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고 하면서 작은 나라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아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에 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놈을 반드시 미국 국회에 입성시키겠노라고 큰소리쳤다. 우리는 모두 장하다고 박수를 쳤는데 오늘 그의 말이 문득 떠오른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본 콜럼버스의 동상 때문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게 높이가 무려 60m나 되는 기념 탑을 세워 꼭대기에 동상을 만들어 올려놓을 뿐 아니라 유해가 담긴 관까지도 세비아 성당에 모셔두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에서 성당에 관을 모시는 것은 성인이나 왕이 아니면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이다. 세비아 성당은 전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콜럼버스의 방대한 계획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었다. 여왕은 자기 나이 또래의 이 거칠고 무모해 보이는 남자에게 새로이 발견된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이익의 10%를 약속하며 탐험 선단을 출범시켜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일화를 만난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한 시민이 콜럼버스에게 말했다. "자네 아니면 신대륙을 탐험할 사람이 없겠는가? 누구라도 배를 몰고 대서양 서쪽으로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이 말에 콜럼버스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달걀을 탁자 위에다 세울 수 있겠소?"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해 보리다." 콜럼버스가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탁자 위에 가볍게 툭툭 쳐서 똑바로 세워 놓았다. "그렇게 세우는 거야 누가 못할까!" 사람들의 항의에, "바로 그것이오. 무슨 일이든 맨 처음 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오. 탐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자신의 아들을 반드시 미국 국회에 입성시키겠노라고 큰소리 친 현지 가이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비자 발급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 부친께서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너 자갈밭에 민들레 홀씨를 뿌렸으니 그 뿌리가 오죽 실하고 질기겠는가.
지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신대륙의 달걀을 부지런히 세우고 있기를 바라며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지중해를 가리키고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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