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珍의 미니 에세이] 곁

  •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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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6  |  수정 2024-12-06 08:53  |  발행일 2024-12-06 제18면
부모·은사 타계로 슬픔에 잠겨

외로움을 직면·수용하면서도

누군가 곁에 두려함은 본성인가
[少珍의 미니 에세이] 곁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아침에 눈을 뜨니 현관에 아들 신발이 보였다. 학회 끝나면 제주도로 바로 내려간다더니 새벽녘 집에 다시 들른 모양이었다. 갑자기 집이 그득해지면서 마음이 바빠졌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해장국에 쓸 북어를 물에 불렸다.

나물을 볶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전 날 나는 곁에서 모시던 스승이 별세하여 장지를 다녀왔다.

부모의 타계 이후 가장 큰 충격이었다. 허전하고 막막하여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참에 멀리 있는 아들이 온 것은 무슨 조화일까. 저 스스로 운이 좋아 텔레파시가 작용한 건가. 보이지 않는 끈이 있어 아들을 내 곁으로 데려온 건가.

누군가의 곁에 있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함은 인간의 본성일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가족이 유일한 곁이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와 동료가 생겼을 때는 그 또한 세상 끝까지 서로의 곁이 될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영원한 것은 없었다. 좋기만 한 것도 아름답기만 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곁에 두려 함은 그 또한 인간의 한계일 것이었다. 인간이 왜 인간인가. 서로 지긋이 기대는 사이라 하여 인간(人間)이 아니던가.

언젠가부터 나의 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듯 세대교체가 일어난 것이다. 새 가정이 생기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가 했더니 부모가 떠나고 형제가 떠나고 스승이 떠났다. 대나무의 햇대가 속으로부터 차오면서 껍질을 밀어내는 것과 같았다. 햇대는 부지런히 껍질을 밀어내다가 저 또한 껍질이 되어 세상 밖으로 밀려 나왔다.

검불인 듯 낙엽인 듯 떨어져나간 분신은 깃털처럼 바람에 실려 지상을 잠시 떠돌았다. 나는 손을 들어 아듀를 고했다. 아듀, 나의 슬픈 곁들이여!

물에 불린 북어를 다듬다 보니 단단한 껍질이 만져졌다. 세찬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는 내내 부둥켜안고 울었을 곁지기였다. 벗겨 내자 여리고 깨끗한 속살이 드러났다. 나는 냄비에 기름을 두른 후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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