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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증명과 변명'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한국 청년 남성의 획일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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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서재/316쪽/1만8천원/안희제 지음 |
1995년생 우진은 어디에나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청년 남성이다. 서울 한복판 자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 별다른 노동 없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중산층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울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대입-연애-군대-취업-결혼이란 'K-타임라인'에서 탈락해 별난 짓을 많이 했다. 그런 그는 1년 전 스스로에게 시한부를 선고했다. 일명 '폭탄 목걸이'. 적을 처치하면 살 기회가 생긴다는 조건이 정해져 있는 폭탄 목걸이처럼, 구체적인 날짜와 조건을 정해두고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코딩을 공부해 자신이 구상 중인 프로그램을 특정한 날짜까지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루지 못할 경우 이를 실행하기로 한다.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가 신간 '증명과 변명'을 펴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동갑내기 친구 '우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책이다. 우진과 수 차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단순한 관찰이나 기록이 아니다. 이 사회에 대한, 그리고 젠더·계급·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 청년 남성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뻔하게 여겨지고, 동시에 청년 남성 본인들에게도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이대남' '여혐' '청년' '시민'…. 그간 청년 남성은 여러 방식으로 호명됐지만 정작 이들의 삶은 모두 기괴할 만큼 비슷하다. '학벌' '군복무' '취업' '결혼' 같은 몇 가지 틀을 기준으로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배제됐다고 느끼는 순간 '잉여' '루저' 같은 말로 자신을 명명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성차별, 학벌 사회, 세대론, 물질 만능 등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다. 문화인류학, 사회학, 철학 이론, 특히 퀴어 이론을 빌려 우진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우진을 비롯한 청년 남성들이 겪는 문제를 분석한다.
우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증명'과 '변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애는 꼭 해야 하는 일이고, 시험은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명령이며, 의미는 돈을 충분히 번 이후에 생각해야 한다. 그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 잘못"이다. 연애의 기회를 놓치고,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해 수능을 다섯 번 친 그는 이런 실패들이 노력이 부족했던 결과라며 모두 자기 잘못으로 돌린다. 매력과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본다. 대입에서 증명하지 못한 능력을 주식으로 증명하려 하고 꽤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주식마저도 결국 '매일 치러야 하는 수능'이 된다.
그런 우진에게 저자는 끊임없이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자기 잘못이라고 착각하는 그 생각조차 이 사회가 주입한 것이라고.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자기계발이란 이름으로 자기착취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우진을 벼랑으로 내몬 구조를 꼬집으며 그를 응원한다. "청년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남성으로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다. (중략)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거나 국가가 조금 투자해 주면 이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남성 말이다. 문제는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 수 없는 남성들까지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착각 혹은 환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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