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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윤아기자 baneulha@yeongnam.com |
#2.한미약품도 상속세 문제가 경영권 분쟁으로 번진 사례다. 창업주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5천400억원의 상속세를 남긴 채 별세했고, 가족들은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일부 납부했으나, 이자 부담으로 인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창업자의 부인인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했으나 창업주 아들들이 반대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번지면서 논란을 키웠다.
◆세계 최고 수준 '60%' 상속세율
앞서 언급한 넥슨이나 한미약품 외에도 삼성이나 LG 그룹 사례처럼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회사 지분을 팔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속세 구조는 경영권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있는 돈'을 돌릴 수 있는 대기업의 사정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배부른 투정'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자산 대부분이 공장 용지나 생산설비이기 때문에 현금유동성이 낮다. 여기에 대부분의 자산은 은행 등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자산 규모만 크고 현금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 사업용 자산을 매각하거나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현재 중소기업계가 지적하는 상속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높은 세율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55%)보다도 높은 최대 60%다. 1997년 45%, 2000년 50%로 계속 인상된 데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최대 주주 할증 과세'에 따라 실제 상속세율은 세계 1위 수준이다. OECD 평균 상속세율이 24~25%임을 고려할 때 '징벌'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상속세율을 높이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인하해 오고 있다. 캐나다는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미국은 55%에서 50%, 35%까지 낮췄다가 2012년 40%로 고정했다.
독일은 2000년 35%에서 30%로 인하했고, 이탈리아는 2000년 27%에서 4%로 내린 후 2001년 상속세를 폐지했다가 2007년 이후 4%를 유지하고 있다.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영국은 최근 상속세 최고세율을 4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뿐 아니라 '최대 주주 할증 과세' 역시 징벌적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최대 주주 할증 과세는 최대 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때 해당 지분의 평가액에 20%를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더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 업종이나 경영상태, 규모 등에 따라 기업 상속의 사례는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으로 할증 과세를 부과하는 것도 지나치게 과도한 처사라는 목소리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기업승계 상속 세제 문제점 및 개선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만 최대 주주에게 획일적인 할증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세법상 실질과세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OECD 평균 상속세율은 24~25%
중기 상당수가 상속세 고금리 대출
'최대 주주 할증 과세'도 독소 조항
정상 승계 차단…사모펀드에 매각
승계 후 사후 관리 요건도 까다로워
전체 유산 아닌 물려받은 만큼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 등 제도 보완 필요
◆상속세 못내 사모펀드에 팔리는 기업들
실제, 중소기업뿐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중견 기업들마저도 상속세로 인해 기업 경영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들의 정상적 승계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기존 기업의 수십 년 역사와 기술·경영 노하우 등 정체성이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샘과 락앤락이다. 한샘은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인수됐다. 창업자 직계 자손 중 경영 후계자가 없었고, 코로나19로 몸값이 높아져 1조4천500억원에 경영권을 넘겼다.
밀폐 용기의 대명사인 락앤락도 상속세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 승계 대신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하지만 경영권 매각 이후 락앤락의 경영실적은 급격히 악화됐다. 2022년 영업이익이 1년 만에 13분의 1 토막 났고, 당기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2023년엔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사업장 및 인력 구조조정을 놓고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밖에 국내 1위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와 국내 광통신 소자 부문 1위 우리로광통신, 화장품 판매 기업인 에이블씨엔씨, 신발 원단 국내 1위 기업 동진섬유 등도 상속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처럼 중소기업 경영자 중 상당수가 가업승계를 망설이거나 아예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상속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세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기업을 승계하더라도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기업승계 혜택을 받은 이후 사후 관리 요건도 까다롭다. 기업 유지 요건이 신사업 진출이나 기업 확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사무용품 제조업체는 창업 2세가 기업을 상속한 뒤 주력 사업을 과학교구로 전환해 매출과 고용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이 기업승계의 발목을 잡았다. 현행 가업승계 제도는 상속인이 가업을 물려받은 뒤 사후 관리 기간(5년) 표준산업 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변경할 수 있어서다.
◆유산세 아닌 '유산취득세' 방식도 고민해야
이 같은 기업승계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상속세를 유럽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상속세율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기업승계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한 해 승계받은 이가 수익을 내서 상속·증여세를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유산취득세' 방식의 개편이다.
OECD 회원국 38곳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이다. '유산세'를 준용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 등이며 나머지 20개 나라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닌 내가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제도로 유산세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행 증여세도 '유산취득세' 방식이 적용된다.
상속세 과표구간과 공제액 확대도 향후 논의 대상이다.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최대주주 60%)로 상향되고, 과표구간이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아진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변동이 없다.
임동원 연구위원은 "상속세는 생전에 이미 소득세 등을 부담하고 난 후의 재원 그 자체이거나 그것을 재원으로 취득한 자산으로서 이중과세의 성격이 있다"면서 "소득세의 세율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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