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구돈 3兆가 서울로

  • 이은경
  • |
  • 입력 2012-03-05 07:49  |  수정 2012-03-05 08:40  |  발행일 2012-03-05 제3면
대구 유통공룡 두얼굴
지역사회 환원은 뒷짐
자금 지역유출 심화로
中企·영세상인 돈줄 말라
현지 법인화 작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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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의 대구지역 진출이 잇따르면서 이들 외지기업이 ‘지역에서 돈을 벌어 서울로 가져간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현대백화점 대구점(사진 위)과 인근 염매시장 전경(사진 아래). 백화점 개점으로 인근 상인들은 교통체증, 임대료 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남일보 DB>

◆지역의 돈은 지역에서 돌아야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개점하면서 지난 한해 대구지역 백화점 전체 판매액은 1조5천683억원으로 늘어났다. 2010년 1조2천737억원에서 3천억원가량 늘어 23.1%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거둬들인 돈도 2010년말 기준으로 한해 1조6천574억원에 이른다. 이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매년 지역에서 벌어들인 3조원이 넘는 돈은 고스란히 서울로 올라간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과 신개념 롯데아울렛 오픈, 이랜드의 동아백화점 인수, 신세계의 동대구환승센터 진출 등은 결국 지역의 돈을 서울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일 뿐이다.

대구시가 매년 조사·발표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지역기여도 조사에 따르면 지역민들의 지갑에서 나온 자금은 그대로 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자금을 지역에 잔류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분야는 근로자 임금과 지역 생산품 매입비용이다. 직원 급여이체 비율을 높이고 지역 생산제품 매입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직원 급여 이체비율은 평균 61.5%에 불과하며 금융권 평균 잔액도 25억원에 불과했다. 코스트코홀세일, 롯데아울렛이 대구지역의 금융기관에 예치한 금액은 0원, 홈플러스는 매장당 겨우 200만원 정도를 예금해 놓고 있을 뿐이다. 또 이마트는 전체 91억원에 이르는 용역 서비스의 지역 발주 비율이 0%였고 코스트코홀세일은 지역 생산제품의 매입이 전체 1천760억원의 2.5%에 불과한 44억원에 그치고 있다. 점포당 평균 1천억원을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대구 거주 직원의 임금과 지역 기업의 납품 금액, 지역은행 예치금, 지방세 등을 뺀 대부분의 자금은 서울로 고스란히 날아가고 있다.

지역에 본사를 둔 용역업체 계약을 통해 지방세 납부 비율을 높이고 질 높은 고용기회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역업체가 아닌 서울에 본사를 둔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가뜩이나 비정규직이나 파견직 근무가 많은 대형마트 고용의 질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영업이익의 사회환원도 생색을 내기엔 너무 적다. 대형유통업체가 저소득층 지원과 봉사활동, 축제, 장학금, 지역단체 후원 등 다양한 명목으로 지출한 지역기여 금액은 전 점포를 모두 합쳐봐야 25억원에 그친다. 점포당 1천억원을 가져가고 1억원을 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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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서구 이마트 트레이더스 비산점 전경. 팔달시장과 인근 영세 상인의 도소매 기능을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성업중이다. 부산과 울산의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지역상권 피해와 자금의 역외유출을 지적한 상인단체, 시민단체, 지자체의 반발로 사업조정에 들어갔거나 개점을 포기했다. <영남일보 DB>

◆지자체·시민단체 뭘했나

단순 유통에만 머무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영업행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용의 질은 낮고 생산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는 없다. 또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은 지역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을 금융 사각지대로 내몬다. 지역의 돈줄이 마르면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의 돈은 지역에서 돌아야 한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아무리 지역 환원을 외쳐도 유통업체에선 본사 중심의 물류시스템을 비롯해 주거래 은행, 정규직 인재채용 등 모든 권한이 본사에 있기 때문에 권한이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따라서 현지 법인화가 적용되면 기업경영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인재채용, 협력업체 육성, 지역상품 판로확대 등에서 지역에 기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1995년 현지법인으로 진출한 <주>광주신세계의 경우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지방 정부에 납부, 지역세수 증대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광주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광주 신세계 장학회 건립, 광주 비엔날레 지원, 광주 신세계 쿨켓 여자농구단 운영 등으로 지역 기업으로서의 면모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광주 신세계의 현지 법인화는 지역 경제 성장에 역행하는 대형 유통업체 진출을 우려한 시민 운동의 압박이 주효했다. 하지만 대구 지역에서의 외지기업 진출은 거의 ‘무혈입성’에 다름없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은 시장경제과 자유경쟁 논리를 내세울 뿐 지역 논리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외지기업 지역 진출과 관련, 지역자치 권한으로 견제 가능한 조건, 규정, 잣대 적용에도 관대하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는 정치적 분야나 사회적 이슈에만 민감할 뿐 지역경제와 민생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 않다.

이마트가 비산점을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로 재개점 할 당시에도 시민 단체의 목소리는 전무했다. 부산의 경우 이마트 트레이더스 서면점 개점을 둘러싸고 상인들과 시민 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 대구에서는 실패한 사업조정 신청까지 받아냈다. 울산 이마트 학정점의 트레이더스는 상인과 시민단체, 지자체가 힘을 합쳐 결국 개점을 막아냈다.

대구중서부슈퍼마켓협동조합 임재영 이사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이어 골목상권까지 대기업들이 밀고 들어오면서 지역 경제는 서울에 뿌리를 둔 대기업의 독식체제에 놓이게 됐다”면서 “대형 할인점과 외지 백화점업체가 지역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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