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들은 ‘대구의 눈물’을 먹고 큰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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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3-05 07:59  |  수정 2012-03-05 08:11  |  발행일 2012-03-05 제1면
[효율과 집중의 그늘 .3] 대기업의 지역유통업 장악
현대百 개점 이후 인근 약령시 임대료 폭등에 좌절
대형마트·백화점, 지역자본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3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산동 현대백화점. 휴일을 맞아 백화점을 찾은 차들이 지하 주차장으로 줄을 이어 들어가고 있었다.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모처럼 백화점 인근 거리도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문을 연 지 6개월여.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반월당 일대의 모습을 크게 바꿔 놓았다. 백화점 인근에는 커피숍과 편의점, 레스토랑, 미용실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좀체 찾아볼 수 없던 10~20대의 젊은이들도 거리에 넘쳐났다. 현대백화점 대구점을 중심으로 건물들은 더욱 화려해졌고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거리가 화려해진 만큼,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 이후 대구 시민의 삶의 질도 높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이웃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날벼락이죠.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약령시에서 30년 넘게 한약재를 팔았다는 김모씨(60)는 요즘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건물 주인이 60만원이던 월세를 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이 들어서기 전부터 임대료가 들썩거려 힘들었는데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는 김씨는 “임대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른 점포로 옮겨야겠지만 장사도 안되는데 점포세만 뛰어 마땅한 곳도 찾을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40만원을 주고 한약방을 운영해왔다는 박모씨(51)는 주인이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200만원을 요구해 아예 약령시를 떠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 이전 약령시에는 약업사와 한의원, 한약방 등 한방 관련 업종 가게가 200여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백화점 개점 이후 한방 관련 업종 가게가 문을 닫거나, 약령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고 170여개만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현대백화점 오픈 전부터 치솟은 임대료는 이미 약업사를 운영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현대백화점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백화점에 인접한 지역은 임대료가 동성로 상권의 70~80% 수준까지 따라 붙었고 일부 가게는 월세가 300만원 수준으로 치솟았다”면서 “전체 상인의 80%가량이 세입자들인데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증가해 손님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오가는 젊은이들은 늘었지만 백화점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염매시장에서 3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모씨(62)는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도 시장에는 얼씬조차 않는다. 점심 전까지 손님 한명 맞지 못했다”고 혀를 찼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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