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고령화가족·셰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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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5-10   |  발행일 2013-05-10 제40면   |  수정 2013-05-10
[신작대결] 고령화가족·셰임



★ 고령화가족

노모에 얹혀사는 나잇값 못하는 3남매 ‘가족 어벤저스’


총체적 난국이다. 자식들 다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면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해도 최소한 자기 앞가림은 하는 게 기본일 터. 하지만 칠순을 앞둔 엄마가 여전히 제 나이 값 못하는 자식들을 뒤치닥거리를 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이 있다. 바로 평균 연령 47세의 인모네 가족이다.

3남매 중 둘째인 인모(박해일)는 데뷔작이 흥행에 참패한 뒤 아무도 찾지 않는 영화감독이다. 월세는 몇개월치가 밀려 있고 담배 한갑 살 돈이 없어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재활용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바람난 아내로부터 이혼까지 요구받은 그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까지 생각한다. 첫째 한모(윤제문)는 또 어떤가.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사고뭉치인 그는 오래전부터 엄마의 집에 빌붙어 살고 있는 만년 백수다. 여기에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이 하는 셋째딸 미연(공효진)까지 가세해 엄마의 근심을 보탠다.

이들이 엄마 집에 들어가 얹혀산다. 역시나 어려서부터 견원지간처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기 일쑤인 한모와 인모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불꽃튀는 신경전과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하고, 자신을 쏙 빼닮은 되바라진 딸 민경(진지희)을 데리고 들어온 미연은 그런 두 오빠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래도 엄마(윤여정)는 자식들을 위해 매일같이 저녁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린다.

‘고령화가족’은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가족의 정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살면서 실패를 했을 때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가족, 그 중에서 엄마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는 송해성 감독은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을 충전하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모네 가족이 그런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물까지 모두 감싸주는 끈끈함이 아닌,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불편한 진실까지 끄집어내 시종 극단적이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각자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게 다반사다. 인모의 입에서 “이런 콩가루가 없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그래도 밥상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란도란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한데 모여 살면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게 가족’이라는 ‘식구(食口)’의 의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령화가족’은 천명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발간 당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못한 가족의 이야기로 재해석한 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파이란’ 등으로 섬세한 심리묘사와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 송해성 감독이다. 그는 뻔하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내밀한 속내를 들춰내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부딪힘과 그것에 내포된 의미들을 다시금 일깨운다.

‘고령화가족’은 딱히 누가 주연임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각각의 캐릭터에 부여된 개성과 매력이 골고루 돋보인다. 서로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한명씩 엄마집으로 모여드는 전반부부터, 그들이 다시 모여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후반부까지 웃음과 눈물을 짓게 만드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과 가족의 초상에 관한 아이러니한 뒤집기도 제법 흥미롭다. ‘고령화가족’을 단순한 가족 영화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족에 대한 끈끈함과 가족이라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의 방식은 우리네 이야기로 절실히 와닿는다.

‘가족 어벤저스’라고 불려도 무방한 캐스팅 조합은 여기에 충분한 힘을 보탰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박해일은 물론, 스크린을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윤제문, 사랑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공효진, 충무로의 기대주 진지희, 그리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윤여정의 출연은 무한한 신뢰감과 기대를 가지기에 충분하다. 개성 넘치는 이들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고 공감까지 불러일으킨 송해성 감독의 연출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삶은 어디선가 계속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 역시 명징하다.

[신작대결] 고령화가족·셰임


★ 셰임

성공한 뉴욕 여피가 24시간 섹스중독에 빠지게 된 비밀

매력적인 외모에 유능함까지 갖춘 성공한 뉴욕 여피 브랜든(마이클 파스벤더)은 남모를 비밀을 안고 있다. 그는 섹스 중독자다. 마스터베이션· 포르노그래피·원나잇스탠드·콜걸·음란채팅 등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의 머릿속은 온통 섹스에 대한 탐닉과 환상으로 채워져있다. 지독한 고독을 숨긴 채 화려함만을 비추고 있는 이 도시에서 섹스는 그의 유일한 소통구나 다름 없다.

‘헝거’로 칸느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셰임’은 파격적인 소재와 표현 수위로 심의 단계부터 이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NC-17(17세 이하 관람 불가. 1990년 이전 X등급) 등급 판정을 내렸지만 그는 오히려 “이 영화에게 X등급은 낙인이 아닌 명예로운 타이틀”이라며 무삭제 개봉을 감행했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와 캐리 멀리건이 파격적인 전라노출과 정사신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감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감이 한몫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셰임’을 통해 화려한 삶에 포장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욕구에 대한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의식세계를 파고든다. 그 과정이 너무나 노골적이고 강렬해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브랜든은 그런 도시인의 이중적이고 단절된 모습을 상징한다. 도시가 허용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섹스만이 외로움과 불안감, 그리고 육체에 갇힌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 혹은 아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브랜든은 가식적인 대화와 감정의 교류보다 말없이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콜걸들이 편하고, 반라의 모습으로 언제나 그를 반겨주는 화상속 여자들이 친근하다.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에게 사회적 유대관계는 언제나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이다. 비록 그 상대가 직장 상사라 할지라도 말이다.

브랜든의 완벽해 보이는 삶은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의 방문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밤무대 가수인 씨씨는 오빠와 달리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늘 필요로 했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오빠 브랜든을 찾아온다. 그녀의 뜻밖의 방문이 탐탁지 않았지만 브랜든은 오빠라는 혈연적 유대감에 그녀를 받아준다. 하지만 씨씨는 위로와 공감을 요구하며 그의 삶 한 부분을 차지하려 든다. 그 때부터 씨씨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한 껄끄럽고 성가신 이물질로 취급된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성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으로 논란과 극찬을 동시에 받았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 등과 비견될 정도로 ‘셰임’이 견지하고 있는 정서와 이야기는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특히 바흐·쳇 베이커·블론디·존 콜트레인 등 이름만 들어도 음악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그런 분위기에 깊이감을 더한다.

‘셰임’은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 소화력을 입증한 마이클 파스벤더의 존재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매력적인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그는 놀랍도록 대담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극 중 브랜든을 매혹적이며 극도로 음습한 인물로 완벽히 담아낸다. 또 애정을 갈구하는 자유분방함과 불안정한 정서로 씨씨 캐릭터를 밀도있게 표현해낸 캐리 멀리건은 보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마력을 줄곧 발산한다. 스티브 맥퀸은 ‘셰임’을 통해 분명 자신만의 뚜렷한 인장을 새겼다. 한동안 그의 이름이 뇌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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