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3) 김광석길

  • 이은경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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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17   |  발행일 2014-06-17 제9면   |  수정 2014-06-17
되살아난 歌客 예술이 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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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초입(위)과 중간에 설치돼 있는 기타 치는 김광석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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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난 고(故)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된 벽화거리다. 이 길은 한국관광공사가 네티즌 투표와 여행전문자문위원 점수를 합산해 뽑은 ‘2014 대한민국 베스트 그 곳’ 9개 지역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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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을 위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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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한 켠을 장식하고 있는 추억의 빨간 공중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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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소개하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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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을 그린 만화 벽화. 전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방명록을 남기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다.



서른셋에 이승과 이별한 김광석.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7년 뒤, 7년 뒤에 마흔 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마흔 살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어요. 할리 데이비슨. 멋진 걸루. 돈도 모아놓았어요. 이런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상당히 걱정하시데요. ‘다리가 닿겠니?’ 그거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어요. 괜찮겠지요? 타고 가다가 괜찮은 유럽 아가씨 있으면 뒤에 태우고 머리 빡빡 깎고 금물 이렇게 들여가지고 가죽바지 입고 체인 막 감고…. 나이 40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환갑 때,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어요. 로맨스…”


◆문화를 통해 전통시장을 살려보자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 길’은 살아있었다면 올해 쉰이 되었을 김광석에 대한 오마주다.

‘김광석 길’의 정확한 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길은 ‘방천시장 문전성시(文傳成市)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달구벌대로와 신천대로가 도시를 가르고 고층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도심 한켠의 방천시장은 여느 시장이 그랬듯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갔다. 1천여개의 점포가 성황을 이루던 한때의 영화는 간곳없고, 겨우 60여개의 점포들이 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었다. 쇠퇴하고 있는 전통시장을 문화를 통해 살려보자는 시도가 문전성시 프로젝트였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가운데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오른 곳이 바로 이곳, 김광석 길이었다.

김광석 길은 신천대로 둑길 아래 방천시장이 끝나는 지점으로 난 좁은 골목이다. 방천시장과 둑길 사이의 폭 3m 남짓의 길이 300여m의 골목길이다. 해가 지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상인들이 버린 쓰레기만 가득 쌓여있던 어둡고 냄새나는 뒷 골목이었다.

이 옹벽에 면한 담벼락과 골목길의 재해석을 위해 벽화 그리기 작업이 시작됐다. 동피랑 벽화마을, 감천동 문화마을을 모델로 삼았다. 단순한 벽화보다는 지역 출신 명사를 그려넣자는 합의도 봤다. 누굴 그려넣을까. 고민은 시작됐다.

김광석은 1964년 1월22일 대구시 남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남구 대봉동은 이후 행정구역이 중구 대봉동으로 바뀌었다. 대봉동은 방천시장에서 버스로 10분 거리. 대봉동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유년기의 대부분을 범어동에서 살았다. 그리고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갔다. 김광석의 입장에서 보면 대구는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김광석을 주제로 택했다.

불량 청소년이나 길고양이 차지가 되었을 뻔한 후미진 골목길은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노래와 인생이 입혀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길로 태어났다. 이 길에서는 조각, 만화, 그림, 일러스트 등 거의 모든 시각예술이 김광석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표현하는 데 동원되었다.



◆김광석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의 길

방천시장 정문 앞길, 즉 달구벌대로에서 시작되는 김광석 길은 시장의 역사, 상인들의 이야기, 방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여 김광석의 노래와 연계시킨 길이다. 조명연구가, 디자이너, 설치미술가, 공예가, 조각가, 화가, 만화작가, 사진가 등 17명이 김광석의 곡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해석하여 작업에 나섰다.

300여m의 담벼락은 김광석과 관련된 모든 것의 전시장이다. 거의 모든 예술이 동원돼 김광석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길은 골목 초입에 있는 기타 치는 김광석 조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 동상은 초입과 골목길 중간에 하나씩 설치됐다. 조각가 손영복씨의 작품이다.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담벼락에는 대형 만화가 그려져 있다. 만화가 천명기씨가 방천시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렸다. ‘방천시장 문전성시’가 어떤 취지로 시작되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도 있다.

김광석이 이루지 못한 꿈은 그림으로 이뤄졌다. 기타를 메고 미소를 지으며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있는 김광석은 화가 이슬기씨의 작품이다. 시인 정훈교씨는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라는 시 ‘벽화에 세들어 사는 남자’로 발길을 붙잡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에 없는 가수 김광석과 대화를 나눈다.

김광석 길은 불과 5~6년 만에 대구 최고의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덩달아 방천시장도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평일에는 수백 명, 주말에는 1만명 가까운 인파가 이 골목을 찾는다.

김광석 길이 성공한 이유는 왜 김광석이 여전히 애창되는지로 설명할 수 있다. ‘방천시장 문전성시’ 총감독 이정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김광석의 음악에 자신을 투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어디엔가 있을 사랑을 기다리며, 때로는 너무 아픈 사랑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마음을 들었다. 누군가는 입영영장을 받고서, 또 누군가는 서른이 되어서야 그의 음악을 진정 느꼈다. 김광석의 음악이 영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떠났고 살아남은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걸을수록 김광석이 그리워지는 길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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